○ 建光 元年(A.D.121; 高句麗 太祖王 69) 봄에, 幽州刺史 馮煥과 玄菟太守 姚光과 遼東太守 蔡諷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국경을 넘어 고구려를 공격하여, 그 우두머리(渠師)를 붙잡아서 목베고 兵馬와 재물을 노획하였다. 宮은 이에 嗣子 遂成에게 군사 2천여명을 거느리고 가서 姚光 등을 맞아 싸우게 하였다. 遂成이 使者를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니 姚光 등은 이를 믿었다. 遂成은 이 틈을 타 險要地를 점거하여 [姚光 등의] 大軍을 막고는 몰래 3천여명의 군사를 보내어 玄菟와 遼東을 공격하여 城郭을 불태우고 2천여명을 殺傷하였다. 이에 [後漢은] 廣陽·漁陽·右北平·涿郡·[遼東]屬國에서 3천여명의 기마병을 출동시켜 함께 [姚光 등을] 구원케 하였으나, 貊人이 벌써 돌아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