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해에 宮이 죽고, 아들 遂成이 왕이 되었다.084084 是歲宮死 子遂成立 『三國史記』에서는 次大王 遂成의 즉위를 146年(後漢 質帝 本初 元年)에 太祖王의 禪讓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여『後漢書』에서 121年(後漢 安帝 建光 元年)에 太祖王 宮의 死亡에 의해 次大王 遂成이 즉위하였다고 한 기사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後漢書』의 기록을 보면 太祖王의 死亡 즉시 高句麗를 공격하자는 姚光의 上疏와 그에 대한 尙書 陳忠의 반대, 그리고 122年 遂成이 漢人포로의 贖還을 단행한데 대한 安帝의 詔 등을 기술하고 있어 일단 사실성이 더 있어 보인다.
반면『三國史記』에 의하면 太祖王이 讓位할 때 나이는 百歲이고 在位 기간이 94年이며, 太祖王·次大王·新大王 3兄弟의 在位年數를 합치면 127年이나 되는데 太祖王이 7세에 즉위하여 母后가 섭정하였다고 하는 등의 不合理한 면을 보이고 있다.『三國史記』의 撰者도『海東古記』의 傳承에 입각해 本紀의 編年을 설정하였으나, 이 점을 의식하여 太祖王 94年條의 註에 ‘案海東古記 …… 建光元年 是宮在位第六十九年 則漢書所記與古記抵梧不相符合 豈漢書所記誤耶’라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宮이 죽은 年代는『後漢書』의 기록을 따르고 그에 수반해 次大王·新大王의 즉위 年代는 조금씩 올려볼 것을 제의한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池內宏,「高句麗王家の上世の世系について」pp. 207~235) 太祖王의 死亡 年代와 次大王이 그의 同母弟라는『三國史記』의 기록을 부정하는 데는 좀더 신중한 검토와 논거가 필요하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5「高句麗本紀」3 太祖王條.
李丙燾,『韓國史』(古代篇), 1978.
池內宏,「高句麗王家の上世の世系について」『滿鮮史硏究』(上世篇) 第一册, 1951, 吉川弘文館.
닫기
姚光이 上書하여, 그들의 초상을 틈타 군대를 출동시켜 공격하고자 하니, [後漢의 조정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이 모두 可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尙書 陳忠이,
“宮이 생전에 악독하여 姚光이 토벌하지 못하였는데, [이제] 그가 죽은 것을 이용하여 치는 것은 義理가 아닙니다. 마땅히 使節을 보내어 弔問하고, 지난날의 罪를 꾸짖고는 그 죄를 용서해 주어 이후 그들이 善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니, 安帝는 그 의견을 따랐다. 다음 해에 遂成이 漢나라의 捕虜를 送還하고 玄菟에 이르러 항복하였다. 詔書를 내려,
“遂成 등이 포악 무도하므로 목을 베어 젓을 담아서 백성에게 보임이 마땅할지나, 다행히 용서함을 얻어 罪를 빌며 항복을 청하는도다. [그러나] 鮮卑·濊貊이 해마다 노략질하여 백성을 잡아가 그 수가 수천명이나 되었는데 [이제] 겨우 수십명만을 보내니, 敎化를 받을려는 마음가짐이 아니다. 지금 이후로는 [後漢의] 縣官들과 싸우지 말 것이며, 스스로 歸順하여 포로를 돌려보내면 [그 숫자만큼] 모두 贖錢을 지불하되, 한 사람당 비단 40匹을 주고 어린이는 어른의 반을 주겠다.”
하였다.
遂成이 죽고 아들 伯固가 王이 되었다.085085 遂成死 子伯固立 伯固는 高句麗 제8대 新大王이다.
『三國史記』에는 新大王에 대해서 ‘諱伯固 固作句 大祖大王之季弟’라 되어 있어『後漢書』의 ‘遂成死 子伯固立’이란 기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36)
宮死 子伯固立
伯固는 高句麗의 제8대 新大王이다. 『三國史記』「高句麗本紀」에는 ‘諱伯固 固作句 大祖大王之季弟’라 되어 있어『三國志』의 기록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즉, 『三國史記』에는 太祖王의 季弟로 되어 있는데『三國志』에는 아들로 되어 있다. 『後漢書』高句驪傳과도 차이가 있다.
太祖王 이후의 高句麗王系에 대해선 3書가 각기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圖解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伯固를 宮의 아들이라 한『三國志』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宮과 遂成 및 伯固의 왕위계승 관계는 『後漢書』에 기록된 父子關係에 의한 것이 아니라『三國史記』所傳에 따라 兄弟關係에 의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6「高句麗本紀」4 故國川王 即位年條·山上王 即位年條.
『後漢書』卷85「東夷列傳」高句驪條.
닫기
그 뒤로 濊貊(고구려)이 服屬하니 동쪽 변방에 사건이 줄어들었다.

註 084
是歲宮死 子遂成立 : 『三國史記』에서는 次大王 遂成의 즉위를 146年(後漢 質帝 本初 元年)에 太祖王의 禪讓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하여『後漢書』에서 121年(後漢 安帝 建光 元年)에 太祖王 宮의 死亡에 의해 次大王 遂成이 즉위하였다고 한 기사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後漢書』의 기록을 보면 太祖王의 死亡 즉시 高句麗를 공격하자는 姚光의 上疏와 그에 대한 尙書 陳忠의 반대, 그리고 122年 遂成이 漢人포로의 贖還을 단행한데 대한 安帝의 詔 등을 기술하고 있어 일단 사실성이 더 있어 보인다.
반면『三國史記』에 의하면 太祖王이 讓位할 때 나이는 百歲이고 在位 기간이 94年이며, 太祖王·次大王·新大王 3兄弟의 在位年數를 합치면 127年이나 되는데 太祖王이 7세에 즉위하여 母后가 섭정하였다고 하는 등의 不合理한 면을 보이고 있다.『三國史記』의 撰者도『海東古記』의 傳承에 입각해 本紀의 編年을 설정하였으나, 이 점을 의식하여 太祖王 94年條의 註에 ‘案海東古記 …… 建光元年 是宮在位第六十九年 則漢書所記與古記抵梧不相符合 豈漢書所記誤耶’라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宮이 죽은 年代는『後漢書』의 기록을 따르고 그에 수반해 次大王·新大王의 즉위 年代는 조금씩 올려볼 것을 제의한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池內宏,「高句麗王家の上世の世系について」pp. 207~235) 太祖王의 死亡 年代와 次大王이 그의 同母弟라는『三國史記』의 기록을 부정하는 데는 좀더 신중한 검토와 논거가 필요하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5「高句麗本紀」3 太祖王條.
李丙燾,『韓國史』(古代篇), 1978.
池內宏,「高句麗王家の上世の世系について」『滿鮮史硏究』(上世篇) 第一册, 1951, 吉川弘文館.
註 085
遂成死 子伯固立 : 伯固는 高句麗 제8대 新大王이다.
『三國史記』에는 新大王에 대해서 ‘諱伯固 固作句 大祖大王之季弟’라 되어 있어『後漢書』의 ‘遂成死 子伯固立’이란 기록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참조>
『三國志』高句麗傳 註 36)
宮死 子伯固立
伯固는 高句麗의 제8대 新大王이다. 『三國史記』「高句麗本紀」에는 ‘諱伯固 固作句 大祖大王之季弟’라 되어 있어『三國志』의 기록과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즉, 『三國史記』에는 太祖王의 季弟로 되어 있는데『三國志』에는 아들로 되어 있다. 『後漢書』高句驪傳과도 차이가 있다.
太祖王 이후의 高句麗王系에 대해선 3書가 각기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圖解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서 伯固를 宮의 아들이라 한『三國志』의 기록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宮과 遂成 및 伯固의 왕위계승 관계는 『後漢書』에 기록된 父子關係에 의한 것이 아니라『三國史記』所傳에 따라 兄弟關係에 의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參考文獻≫
『三國史記』卷16「高句麗本紀」4 故國川王 即位年條·山上王 即位年條.
『後漢書』卷85「東夷列傳」高句驪條.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신상
정치>왕실>국왕>즉위·책봉
정치>외교>문서>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