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漢] 武帝가 朝鮮을 멸망시키고서 沃沮 땅으로 玄菟郡을 삼았다.092092 以沃沮地爲玄菟郡 『三國志』東沃沮傳에는 ‘以沃沮城爲玄菟郡’으로 되어 있다.『三國志』의 경우 沃沮城에 玄菟郡의 治所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後漢書』에서는 沃沮城을 沃沮地로 바꾸어 쓰고 있다. 이 기사는 玄菟=沃沮說의 가장 중요한 전거이다.
<참조>
『三國志』東沃沮傳 註 6)
玄菟郡
玄菟郡의 위치에 관한 說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① 沃沮說; 沃沮에 玄菟郡의 郡治가 설치되었다는 說이다. 즉, 오늘날의 咸興을 中心으로 한 咸鏡道 일대가 玄菟郡 지역이라고 본 것이다. 『三國志』東沃沮傳의 ‘以沃沮城爲玄菟郡’이라는 기사가 그 주된 전거이다. 이 說은 朝鮮時代의 實學者인 韓鎭書(『海東繹史』「地理考」玄菟郡條)·安鼎福(『東史綱目』「地理考」玄菟條)·丁若鏞(『疆域考』玄菟考)·金正浩(『大東地志』漢四郡條)를 비롯하여, 日本人 池內宏(「漢魏晋の玄菟郡と高句麗」pp. 191~206)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부정되고 있다.
② 沃沮 및 高句麗說; 압록강 중류에서 咸興에 이르는 交通路를 따라 東西로 길게 설치되었다는 說이다. 日本人 和田淸이 이를 주장한 대표적 學者이다. (「玄菟郡考」pp. 1~21) 다시 郡治에 대해서는 沃沮縣說과 高句麗縣說로 나누어진다. 한편 淸末의 學者 楊守敬은 玄菟郡이 沃沮에서 遼山(興京·老城일대)에 걸쳐 설치되었고, 郡治는 遼山 高句麗縣이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하였다. (「汪士鐸漢志釋地駁議」)
③ 高句麗說; 본래 玄菟郡은 鴨綠江 中流一帶에 세워졌고, 郡治는 高句麗이었다는 주장이다. 李丙燾가 이 說의 代表的 學者인데, 玄菟라는 명칭도 高句麗의 수도인 丸都(터=神聖地)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玄菟郡及臨屯郡考」pp. 187~190)
≪參考文獻≫
韓鎭書, 『海東繹史』續卷4「地理考」4 玄菟郡條.
安鼎福, 『東史綱目』附下「地理考」玄菟條.
丁若鏞, 『疆域考』卷1 玄菟條.
金正浩, 『大東地志』「方輿總志」漢四郡條.
李丙燾, 「玄菟郡及臨屯郡考」『史學雜誌』41編 4·5號, 1930(『韓國古代史硏究』 1976)
楊守敬, 「汪士鐸漢志釋地駁議」『晦明軒稿』
池內宏, 「漢魏晋の玄菟郡と高句麗」『史苑』14-3, 1942(『滿鮮史硏究』1951)
和田淸, 「玄菟郡考」『東亞史硏究』(滿洲編),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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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夷貊의 침략을 받아 郡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고는 沃沮를 縣으로 고쳐 樂浪[郡]의 東部都尉에 속하게 하였다. [後漢] 光武帝 때에 이르러서는 都尉의 관직을 없앴다. 이후부터는 그들의 우두머리(渠帥)를 封하여 沃沮侯로 삼았다.093093 後皆以封其渠帥爲沃沮侯 내용상 ‘爲縣侯’가 옳다.『三國志』東沃沮傳에는 ‘其後皆以其縣中渠帥爲縣侯 不耐·華麗·沃沮諸縣皆爲侯國’으로 되어 있다.『後漢書』에서는 不耐·華麗 등 濊에 관한 설명은 싣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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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는 지역이 좁고 작은데다가 큰 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어서 마침내 [고]구려에 臣屬케 되었다. [고]구려는 그 지역의 大人을 뽑아 使者로 삼아서 邑落을 [토착 渠帥와] 함께 다스리게 하였으며,094094 以相監領 『三國志』東沃沮傳에는 ‘使相主領’으로 되어 있다. ‘主領’은 대개 ‘주관하고 다스리다’로 해석되는데,『後漢書』에서는 ‘主’를 ‘監’으로 고쳐 그 뜻을 보다 명확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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租稅095095 責其租稅 『三國志』東沃沮傳에는 ‘又使大加統責其租稅’라 하여 大加가 使者를 통솔하여 租稅의 징수를 총괄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後漢書』의 경우 ‘大加’를 쓰지 않음으로써 使者의 租稅징수 역할만을 알게 하고 ‘大加’의 역할은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참조>
『三國志』東沃沮傳 註 16)
使者
이 使者는 高句麗의 官階名이며, 高句麗 初期에는 大加 아래 소속되어 있었다.
高句麗는 때에 따라 정복지의 집단의 長이나 유력자를 使者로 임명하여 조세수취를 담당케 하는 간접지배양식을 택하기도 하였는데, 沃沮의 경우가 그 一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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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貂布096096 貂布 『三國志』東沃沮傳에는 ‘貊布’로 되어 있다. 貂布(=貂皮)는 백두산 일대 지역의 명물의 하나로 일찍부터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貂皮는 挹婁 및 鮮卑의 特産이기도 하였다. 貊은 전설상의 동물이므로 貊布도 혹 貂布의 異稱이었는지 모르겠다.『後漢書』「鮮卑列傳」鮮卑條에 보면 ‘鮮卑者 亦東胡之支也 …… (中略)…… 又有貂·豽·鼲子 皮毛柔蝡 故天下以爲名裘’라는 記錄이 있다.
≪參考文獻≫
『後漢書』卷90「烏丸鮮卑列傳」鮮卑條.
『三國志』卷30「東夷傳」東沃沮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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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鹽 및 여타 해산물을 징수하고, 美女를 뽑아 그 종이나 妾으로 삼았다.

註 092
以沃沮地爲玄菟郡 : 『三國志』東沃沮傳에는 ‘以沃沮城爲玄菟郡’으로 되어 있다.『三國志』의 경우 沃沮城에 玄菟郡의 治所를 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後漢書』에서는 沃沮城을 沃沮地로 바꾸어 쓰고 있다. 이 기사는 玄菟=沃沮說의 가장 중요한 전거이다.
<참조>
『三國志』東沃沮傳 註 6)
玄菟郡
玄菟郡의 위치에 관한 說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진다.
① 沃沮說; 沃沮에 玄菟郡의 郡治가 설치되었다는 說이다. 즉, 오늘날의 咸興을 中心으로 한 咸鏡道 일대가 玄菟郡 지역이라고 본 것이다. 『三國志』東沃沮傳의 ‘以沃沮城爲玄菟郡’이라는 기사가 그 주된 전거이다. 이 說은 朝鮮時代의 實學者인 韓鎭書(『海東繹史』「地理考」玄菟郡條)·安鼎福(『東史綱目』「地理考」玄菟條)·丁若鏞(『疆域考』玄菟考)·金正浩(『大東地志』漢四郡條)를 비롯하여, 日本人 池內宏(「漢魏晋の玄菟郡と高句麗」pp. 191~206)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대체로 부정되고 있다.
② 沃沮 및 高句麗說; 압록강 중류에서 咸興에 이르는 交通路를 따라 東西로 길게 설치되었다는 說이다. 日本人 和田淸이 이를 주장한 대표적 學者이다. (「玄菟郡考」pp. 1~21) 다시 郡治에 대해서는 沃沮縣說과 高句麗縣說로 나누어진다. 한편 淸末의 學者 楊守敬은 玄菟郡이 沃沮에서 遼山(興京·老城일대)에 걸쳐 설치되었고, 郡治는 遼山 高句麗縣이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하였다. (「汪士鐸漢志釋地駁議」)
③ 高句麗說; 본래 玄菟郡은 鴨綠江 中流一帶에 세워졌고, 郡治는 高句麗이었다는 주장이다. 李丙燾가 이 說의 代表的 學者인데, 玄菟라는 명칭도 高句麗의 수도인 丸都(터=神聖地)에서 유래하였다고 보았다. (「玄菟郡及臨屯郡考」pp. 187~190)
≪參考文獻≫
韓鎭書, 『海東繹史』續卷4「地理考」4 玄菟郡條.
安鼎福, 『東史綱目』附下「地理考」玄菟條.
丁若鏞, 『疆域考』卷1 玄菟條.
金正浩, 『大東地志』「方輿總志」漢四郡條.
李丙燾, 「玄菟郡及臨屯郡考」『史學雜誌』41編 4·5號, 1930(『韓國古代史硏究』 1976)
楊守敬, 「汪士鐸漢志釋地駁議」『晦明軒稿』
池內宏, 「漢魏晋の玄菟郡と高句麗」『史苑』14-3, 1942(『滿鮮史硏究』1951)
和田淸, 「玄菟郡考」『東亞史硏究』(滿洲編), 1955.
註 093
後皆以封其渠帥爲沃沮侯 : 내용상 ‘爲縣侯’가 옳다.『三國志』東沃沮傳에는 ‘其後皆以其縣中渠帥爲縣侯 不耐·華麗·沃沮諸縣皆爲侯國’으로 되어 있다.『後漢書』에서는 不耐·華麗 등 濊에 관한 설명은 싣지 않고 있다.
註 094
以相監領 : 『三國志』東沃沮傳에는 ‘使相主領’으로 되어 있다. ‘主領’은 대개 ‘주관하고 다스리다’로 해석되는데,『後漢書』에서는 ‘主’를 ‘監’으로 고쳐 그 뜻을 보다 명확히 하였다.
註 095
責其租稅 : 『三國志』東沃沮傳에는 ‘又使大加統責其租稅’라 하여 大加가 使者를 통솔하여 租稅의 징수를 총괄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後漢書』의 경우 ‘大加’를 쓰지 않음으로써 使者의 租稅징수 역할만을 알게 하고 ‘大加’의 역할은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참조>
『三國志』東沃沮傳 註 16)
使者
이 使者는 高句麗의 官階名이며, 高句麗 初期에는 大加 아래 소속되어 있었다.
高句麗는 때에 따라 정복지의 집단의 長이나 유력자를 使者로 임명하여 조세수취를 담당케 하는 간접지배양식을 택하기도 하였는데, 沃沮의 경우가 그 一例이다.
註 096
貂布 : 『三國志』東沃沮傳에는 ‘貊布’로 되어 있다. 貂布(=貂皮)는 백두산 일대 지역의 명물의 하나로 일찍부터 중국에 널리 알려졌다. 貂皮는 挹婁 및 鮮卑의 特産이기도 하였다. 貊은 전설상의 동물이므로 貊布도 혹 貂布의 異稱이었는지 모르겠다.『後漢書』「鮮卑列傳」鮮卑條에 보면 ‘鮮卑者 亦東胡之支也 …… (中略)…… 又有貂·豽·鼲子 皮毛柔蝡 故天下以爲名裘’라는 記錄이 있다.
≪參考文獻≫
『後漢書』卷90「烏丸鮮卑列傳」鮮卑條.
『三國志』卷30「東夷傳」東沃沮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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