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建武 20년(A.D.44; 百濟 多婁王 17) 에 韓의 廉斯134134 廉斯 『三國志』韓傳에 引用된『魏略』에 廉斯鑡說話가 실려 있다. 廉斯는 地名인 듯하나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다. 一說에는 黃海道의 瑞興부근으로 보기도 한다.(李丙燾,「三韓問題의 硏究」pp. 237~298) 이것은 樂浪의 位置를 논할 때 종종 引用되고 있다.
≪參考文獻≫
李丙燾,「三韓問題의 硏究」『韓國古代史硏究』1976.
金貞培,「三韓の位置に對しての從來の說と文化的性格の檢討」『朝鮮硏究年報』12, 1970, 朝鮮硏究會, 東京.
丁仲煥,「廉斯鑡說話考-加羅前史의 試考로서-」『大丘史學』7·8合輯, 1973.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檀學報』41,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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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 蘇馬諟 등이 樂浪에 와서 공물을 바쳤다. [後漢]의 光武帝는 蘇馬諟를 封하여 漢의 廉斯邑君으로 삼아 樂浪郡에 소속시키고 철마다 朝謁하도록 하였다. 靈帝 말년에 韓과 濊가 모두 강성해져 [漢나라의] 郡縣이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자, 난리에 고통스러운 백성들이 韓으로 도망하여 流入하는 경우가 많았다.

註 134
廉斯 : 『三國志』韓傳에 引用된『魏略』에 廉斯鑡說話가 실려 있다. 廉斯는 地名인 듯하나 어딘지는 확실하지 않다. 一說에는 黃海道의 瑞興부근으로 보기도 한다.(李丙燾,「三韓問題의 硏究」pp. 237~298) 이것은 樂浪의 位置를 논할 때 종종 引用되고 있다.
≪參考文獻≫
李丙燾,「三韓問題의 硏究」『韓國古代史硏究』1976.
金貞培,「三韓の位置に對しての從來の說と文化的性格の檢討」『朝鮮硏究年報』12, 1970, 朝鮮硏究會, 東京.
丁仲煥,「廉斯鑡說話考-加羅前史의 試考로서-」『大丘史學』7·8合輯, 1973.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檀學報』41, 1976.
주제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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