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正始 연간(A.D.240~248; 高句麗 東川王 14~中川王 1)
에 幽州刺史 毌丘儉이 [高]句麗를 토벌하면서 玄菟太守 王頎를 夫餘에 파견하였다. 位居는 大加를 보내어 郊外에서 [王頎를] 맞이하게 하고 군량을 제공하였다. [位居의] 季父인 牛加가 딴 마음을 품자, 位居는 季父 父子를 죽이고 [그들의] 재물을 적몰, 조사관을 파견하여 재산 목록(簿歛)을 만들어 官에 보내었다.
옛 부여의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DB주석 - 홍수나 가뭄이 고르지 못하여) 五穀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王에게 돌려 ‘王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麻余가 죽고, 그의 아들인 여섯 살짜리 依慮를 세워 王으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