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宮이 죽고 그 아들 伯固가 王이 되었다. 順帝와 桓帝 연간에 다시 遼東郡을 침공하여 新安과 居鄕을 노략질하고, 또 西安平을 공격하여 도중에서 帶方令을 죽이고 樂浪太守의 妻子를 포로로 사로잡았다.
靈帝의 建寧 2년(A.D.169; 高句麗 新大王 5)에 玄菟太守 耿臨이 그들을 토벌하여 수 백 명을 죽이고 사로잡으니, 伯固가 항복하여 遼東에 속하였다.
熹平 연간(A.D.172~177; 高句麗 新大王 8~13)에 伯固는 玄菟郡에 속하기를 청하였다. 公孫度의 세력이 遼東에 웅거하자, 伯固는 大加 優居와 主簿 然人 등을 파견하여 [公孫]度를 도와 富山의 도적을 격파하였다.
伯固가 죽고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拔奇, 작은 아들은 伊夷模였다. 拔奇는 어질지 못하여, 國人들이 함께 伊夷模를 옹립하여 王으로 삼았다. 伯固 때부터 [고구려는] 자주 遼東을 노략질하였고, 또 流亡한 胡[族] 5백여戶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