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西晋]의 武帝 때에는 자주 와서 朝貢을 바쳤는데, 太康 6년(A.D.285; 高句麗 西川王 16)에 이르러 慕容廆의 습격을 받아 패하여 [夫餘]王 依慮는 자살하고, 그의 자제들은 沃沮로 달아나 목숨을 보전하였다. 武帝는 그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부여왕이 대대로 충성과 효도를 지키다가 몹쓸 오랑캐에게 멸망되었음을 매우 가엾게 생각하노라. 만약 그의 유족으로서 復國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방책을 강구하여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하게 하라.”
이에 有司가 보고하기를,
“護東夷校尉인 鮮于嬰이 부여를 구원하지 않아서 기민하게 대응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고 하였다. [武帝는] 조서를 내려 [선우]영을 파면시키고 何龕으로 교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