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西晋의] 武帝 太康 元年(A.D.280; 百濟 古爾王 47)과 2년(A.D.281; 百濟 古爾王 48) 에 그들의 임금이 자주 사신을 파견하여 토산물을 조공하였고, [太康] 7년(A.D.286; 百濟 責稽王 1)·8년(A.D.287; 百濟 責稽王 2)·10년(A.D.289; 百濟 責稽王 4)에도 자주 왔다.028028 武帝太康元年……又頻至 西晋 武帝 年間(在位 265~290)에 東夷諸國과의 關係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76(咸寧 2年) 二月 東夷八國歸化; 七月 東夷十七國內附
277(咸寧 3年) 是歲東夷三國內附
278(咸寧 4年) 三月 東夷六國來獻; 是歲東夷九國內附
280(太康 元年) 六月 東夷十國歸化; 七月 東夷二十國朝獻
281(太康 2年) 三月 東夷五國朝獻; 六月 東夷五國內附
282(太康 3年) 九月 東夷二十九國歸化
286(太康 7年) 八月 東夷十一國內附; 是歲馬韓等十一國遣使來獻
287(太康 8年) 八月 東夷二國內附
288(太康 9年) 九月 東夷七國詣校尉內附
289(太康 10年) 五月 東夷十一國內附; 是歲東夷絕遠三十餘國來獻
290(太熙 元年) 二月東夷七國朝貢
291(元康 元年) 是歲東夷十七國詣校尉內附
우리가 三國의 開始를 언급하게 될 때 三韓의 記事때문에 三國의 國家形成이 항상 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年代를 잡곤 하였다. 여기의 馬韓기사도 그러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데, 馬韓과 百濟와의 관계는 앞으로 더 검토를 가해야 될 여지가 있다.
≪參考文獻≫
全海宗, 「韓中朝貢 關係考-韓中關係史의 鳥瞰을 위한 導論-」『東洋史學硏究』1, 1966; 『韓中關係史硏究』1970, 一潮閣
宋台鎬, 「古代韓中의 文物交流에 對한 硏究-三國時代의 朝貢外交를 中心으로-」『安東敎大論文集』1, 1968.
李春植, 「朝貢의 起源과 意味」『中國學報』10, 1969.
崔槿默, 「百濟의 對中關係小考」『百濟硏究』2, 1971.
徐榮洙, 「古代 韓中關係 硏究 試論」『學術論叢』5, 1981; 「三國과 南北朝交涉의 性格」『東洋學』11, 1981.
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1954, 東洋文庫.
江烟武, 「四~六世紀の朝鮮三國と日本」『古代の日本と朝鮮』1974.
坂元義種, 「三國史記百濟本紀の史料批判-中國諸王朝との交涉記事を中心に-」『韓』4卷 2號, 1975; 「譯註中國史書百濟傳」『百濟史の硏究』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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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熙 元年(A.D.290; 百濟 責稽王 5)에는 東夷校尉 何龕에게 와서 조공을 바쳤다. 咸寧 3년(A.D.277; 百濟 古爾王 44)에 다시 [사절이] 왔으며, 이듬해에 또 內附하기를 청하였다.029029 咸寧三年復來 明年又請內附 『晋書』馬韓傳의 기사에서 이 부분은 年代順으로 事件이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混亂이 일어나고 있다. 太康·太熙 年間의 기록이 먼저 나온 후에 咸寧 年間의 기사를 서술한 것은 옳지 않다.
≪參考文獻≫
全海宗, 「韓中朝貢關係考」『東洋史學硏究』1, 1966; 『韓中關係史硏究』1970.
宋台鎬, 「古代韓中의 文物交流에 對한 硏究」『安東敎大論文集』1, 1968.
李春植, 「朝貢의 起源과 意味」『中國學報』10, 1969.
崔槿默, 「百濟의 對中關係小考」『百濟硏究』2, 1971.
徐榮洙, 「古代 韓中關係 硏究 試論」『學術論叢』5, 1981; 「三國과 南北朝交涉의 性格」『東洋學』11, 1981.
江烟武, 「四~六世紀の朝鮮三國と日本」『古代の日本と朝鮮』1974.
坂元義種, 「三國史記百濟本紀の史料批判」『韓』4卷 2號, 1975; 「譯註中國史書百濟傳」『百濟史の硏究』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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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28
武帝太康元年……又頻至 : 西晋 武帝 年間(在位 265~290)에 東夷諸國과의 關係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276(咸寧 2年) 二月 東夷八國歸化; 七月 東夷十七國內附
277(咸寧 3年) 是歲東夷三國內附
278(咸寧 4年) 三月 東夷六國來獻; 是歲東夷九國內附
280(太康 元年) 六月 東夷十國歸化; 七月 東夷二十國朝獻
281(太康 2年) 三月 東夷五國朝獻; 六月 東夷五國內附
282(太康 3年) 九月 東夷二十九國歸化
286(太康 7年) 八月 東夷十一國內附; 是歲馬韓等十一國遣使來獻
287(太康 8年) 八月 東夷二國內附
288(太康 9年) 九月 東夷七國詣校尉內附
289(太康 10年) 五月 東夷十一國內附; 是歲東夷絕遠三十餘國來獻
290(太熙 元年) 二月東夷七國朝貢
291(元康 元年) 是歲東夷十七國詣校尉內附
우리가 三國의 開始를 언급하게 될 때 三韓의 記事때문에 三國의 國家形成이 항상 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年代를 잡곤 하였다. 여기의 馬韓기사도 그러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데, 馬韓과 百濟와의 관계는 앞으로 더 검토를 가해야 될 여지가 있다.
≪參考文獻≫
全海宗, 「韓中朝貢 關係考-韓中關係史의 鳥瞰을 위한 導論-」『東洋史學硏究』1, 1966; 『韓中關係史硏究』1970, 一潮閣
宋台鎬, 「古代韓中의 文物交流에 對한 硏究-三國時代의 朝貢外交를 中心으로-」『安東敎大論文集』1, 1968.
李春植, 「朝貢의 起源과 意味」『中國學報』10, 1969.
崔槿默, 「百濟의 對中關係小考」『百濟硏究』2, 1971.
徐榮洙, 「古代 韓中關係 硏究 試論」『學術論叢』5, 1981; 「三國과 南北朝交涉의 性格」『東洋學』11, 1981.
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1954, 東洋文庫.
江烟武, 「四~六世紀の朝鮮三國と日本」『古代の日本と朝鮮』1974.
坂元義種, 「三國史記百濟本紀の史料批判-中國諸王朝との交涉記事を中心に-」『韓』4卷 2號, 1975; 「譯註中國史書百濟傳」『百濟史の硏究』1979.
註 029
咸寧三年復來 明年又請內附 : 『晋書』馬韓傳의 기사에서 이 부분은 年代順으로 事件이 기술되어 있지 않아서 混亂이 일어나고 있다. 太康·太熙 年間의 기록이 먼저 나온 후에 咸寧 年間의 기사를 서술한 것은 옳지 않다.
≪參考文獻≫
全海宗, 「韓中朝貢關係考」『東洋史學硏究』1, 1966; 『韓中關係史硏究』1970.
宋台鎬, 「古代韓中의 文物交流에 對한 硏究」『安東敎大論文集』1, 1968.
李春植, 「朝貢의 起源과 意味」『中國學報』10, 1969.
崔槿默, 「百濟의 對中關係小考」『百濟硏究』2, 1971.
徐榮洙, 「古代 韓中關係 硏究 試論」『學術論叢』5, 1981; 「三國과 南北朝交涉의 性格」『東洋學』11, 1981.
江烟武, 「四~六世紀の朝鮮三國と日本」『古代の日本と朝鮮』1974.
坂元義種, 「三國史記百濟本紀の史料批判」『韓』4卷 2號, 1975; 「譯註中國史書百濟傳」『百濟史の硏究』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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