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正始 3년(A.D.242; 高句麗 東川王 16)
位宮이 西安平을 노략질하였다.
5년, 幽州刺史 毋丘儉이 만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玄菟를 나와 位宮을 공격하였다. 位宮은 步兵과 騎兵 2만을 거느리고 毋丘儉의 군대를 역습하여 沸流에서 크게 싸웠다. 位宮이 싸움에 져 달아나니, 儉의 군대는 추격하여 峴에 이르러, 수레를 달아 매고 말을 묶어 丸都山에 올라 그 나라의 王都를 격파하고 1만여명을 목베어 죽이니, 位宮은 홀로 처자식을 거느리고 멀리 달아나 숨었다.
6년(A.D.245; 高句麗 東川王 19)에 [毋丘]儉이 다시 공격하니, 位宮은 겨우 諸加만 이끌고 沃沮로 달아났다. 儉은 장군 王頎에게 추격하도록 하여 沃沮 천여리를 지나 肅愼의 남쪽 지경에까지 이르러 돌에 功을 새겨 기록하였다. 또 丸都山에 이르러 不耐城이라 命名하고 돌아왔다.
그 후 다시 中國과 왕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