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打倒帝國主義同盟

金日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참다운 맑스·레닌주의 기치밑에 자주적으로 발전시키는데서 출발점으로 된것은 1926년 타도제국주의동맹(ㅌ, ㄷ―트, 드라고 읽는다―引用者 註)의 결성이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참다운 공산주의적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의 결성은 우리 혁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력사적인 선언이였습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이 결성된 때로부터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은 자주성의 원칙에 기초하여 진행되게 되였으며 바로 이때로부터 우리 당의 영광스러운 뿌리가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013013 《조선전사》 권16, p.64.닫기

이 金日成敎示는 1975년 10월 9일, 그가 한 演說 〈朝鮮勞動黨創建 서른돌에 즈음하여〉에 있는 것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그는 이미 北韓 朝鮮勞動黨의 뿌리를 朝鮮共產主義運動이 아니라 自己自身의 「活動」에 두도록 하고 있다. 이는 朝鮮共產主義運動과 金日成은 그 뿌리가 다르다는 言明이기도 하다.
《조선전사》는 또 1926년 6월, 金日成이 金亨稷의 遺言을 받은 후 樺甸의 華成義塾으로 가서 거기에서 10월 17일, ‘ㅌ, ㄷ’를 結成하였다라고 하고 있으며,014014 위의 책 p.62.닫기 그 직후에 義塾을 中退하였다고도 한다.
華成義塾은 1926년 3월, 正義府의 崔東旿가 樺甸官街에 설립한 修業年限 1년 6개월의 학교였는데 設立 당시에는 敎員 2名, 生徒 30名이 있었다. 金亨稷은 1926년 6월에 사망하였으므로 金日成이 이 義塾에 在學한 것은 이해 3월부터 6월까지로 推定된다. 《전사》는 ‘父親의 遺言’을 받들어서 共產主義運動으로 나아 갈 金日成을 꾸며내기 위하여 일부러 入學을 6월에 가져 온 것이다.015015 위의 책 pp.73〜77.닫기 入學, 退學을 이렇게 歪曲한 것보다 더 중대한 揑造는 그가 1926년 10월에 民族主義團體 正義府 傘下의 華成義塾에서 共產主義的 革命組織을 結成하였고 이것이 北韓黨의 뿌리가 되었다는 대목이다.
打倒帝國主義同盟(ㅌ, ㄷ)은 실제로 있었던 組織이지만, 場所는 樺甸縣이 아니라 長春 西部의 懷德縣 五家子이며 結成年代는 1926년이 아니라 1930년이다. 그 結成에 참가한 靑年은 張基明·최정락·玄均·金赫·崔泉·文時宣 등이었는데, 1930년 가을 五家子에 李(?)·桂(桂永春) 兩人과 같이 나타난 金聖柱(金日成)가 여기에 망라되었다.016016 崔衡宇, 《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1집(東方文化社, 1946) pp.29〜30.닫기 이 靑年들은 모두 民族主義團體 國民府의 朝鮮革命軍을 脫退하여 새로 暴力團體를 형성한 李鍾洛 傘下의 靑年들로 약간 左傾化되어 있기는 하였으나 共產黨員이 되기에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었다.017017 《金日成評傳》 p.121 이하.닫기 따라서 金日成이 造作한 「ㅌ, ㄷ」는 1930년의 李鍾洛一派 五家子靑年組織을 1926년의 樺甸縣城에 이동시키고 五家子의 동지들을 전부 隱蔽하여 華成義塾生과 따로 結成하였다는 날조이다.
《조선전사》의 上記引用文은 自主性을 강조하고 있는데 自主性은 主體史觀의 중요한 構成槪念이다. 그런데 이상의 事實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개념에는 金日成의 虚偽가 들어 있다. 결국 朝鮮勞動黨은 자주성이나 共產主義를 허울로 하고 이러한 개념들을 구사하면서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金日成의 私黨으로 되고만 것이다.

註 013
: 《조선전사》 권16, p.64.
註 014
: 위의 책 p.62.
註 015
: 위의 책 pp.73〜77.
註 016
: 崔衡宇, 《海外朝鮮革命運動小史》 1집(東方文化社, 1946) pp.29〜30.
註 017
: 《金日成評傳》 p.121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