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카륜會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30년 6월 중순, 카륜에 도착하시였다. …그리하여 력사적인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회의가 열리게 되였다. 카륜회의는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에 걸쳐 극비밀리에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018018 《조선전사》 권16, pp.150〜151.닫기

카륜會議는 《조선전사》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로 되어 있다. 여기서 한 金日成 演說에는 ‘主體思想의 創始’가 宣布되고 主體思想에 기초하여 朝鮮革命의 路線과 戰略戰術이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즉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理論·抗日武裝闘爭路線·反日民族統一戰線路線·黨創建方針 등이 여기에서 밝혀졌고, 이 會議 후에 朝鮮革命軍이 결성되어 植民地의 民族解放運動에서 武裝闘爭을 주류로 하는 새 시대가 펼쳐졌다고 그들은 주장한다.019019 위의 책 p.168 이하.닫기 그러나 위의 引用文을 보면, 우선 共靑과 反帝靑年同盟이 問題가 된다. 「反帝靑年同盟」은 金日成이 1927년 8월 27일, 吉林에서 ‘ㅌ, ㄷ’를 改編하여 組織하고, 「共靑」 즉 「朝鮮共產主義靑年同盟」은 그 다음날인 8월 28일에 結成하였다고 그들은 주장한다.020020 위의 책 pp.77〜78 이하.닫기 그러나 金日成이 華成義塾을 中退한 후인 1926년 後半은 대체로 母親이 있었던 撫松縣城에 있었고 그후 潘陽의 平旦中學에 갔다가 여기에서도 中退하여 1927년 여름에 吉林省 부근의 毓文中學校 2學年에 전학하였다. 그 당시 滿洲地方의 中學校는 8월 24일에 第1學期 前期授業이 시작하였으므로 그가 전학한 3일만에 反帝靑年同盟, 그리고 그 다음날에 共靑을 결성하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021021 《金日成評傅(續)》 p.107.닫기 게다가 國際共產主義運動에서의 일련의 反帝同盟結成은 1928년의 「코민테른第6次大會」 이후이기 때문에 金日成은 「反帝靑年同盟」을 보통의 反帝同盟보다 1년이나 앞당겨 결성하는 幼稚한 歪曲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022022 위의 책 p.137 이하.닫기 이런 점으로 보아 「反帝靑年同盟」이나 「共靑」은 現在의 北韓에서만 통용하는 架空組織이란 것을 쉽사리 알 수가 있다.
다음으로 1930년 6월말과 7월초라는 시기에 金日成은 會議를 개최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1929년 5월에 吉林毓文中學校 3學年을 中退하여 그후는 대체로 西間島 興京縣 地方의 民族主義團體 國民府의 傘下組織인 南滿韓人靑年總同盟의 平盟員으로 있었다.023023 위의 책 p.222 이하.닫기 1929년말에 그는 撫松에서 南韓靑總의 下部地方組織인 새날少年同盟結成에 참가하였으며,024024 위의 책 p.253 이하.닫기 1930년 3월에는 興京縣 旺淸門에서 國民府 傘下組織인 南滿朝鮮農民同盟·南韓靑總·南滿女子敎育會가 東省農民總同盟으로 단일화되었을 때 第二次會議가 열린 3월 14일, 撫松·安圖 地方同盟組織委員으로 被選되었다.025025 위의 책 p.260 이하.닫기 그후 그는 安圖農民同盟을 國民府 산하에 網羅하기 위하여 吉林을 거쳐 東南의 敦化縣 四道荒溝까지 갔는데 5월 中旬, 거기서 國民府가 준 임무를 포기하고 吉林의 서쪽에 있는 長春縣 卡倫(카륜)에 있었던 李鍾洛의 地盤인 卡倫 賈賈屯으로 갔다.026026 《金日成評傳》 p.272 이하.닫기 그는 거기서 進明學校의 少年探險隊를 지도하여 6월말이나 7월초에는 李鍾洛이 거느리고 있었던 國民府 脫退派 朝鮮革命軍에 參士의 자격으로 網羅되었다.027027 위의 책 p.344 이하.닫기 따라서 卡倫에서 이 무렵에 카륜會議가 열렸다면 그 회의란 李鍾洛이 賈賈屯에 와서 金聖柱를 그가 거느리는 國民府 脫退派 朝鮮革命軍의 軍人으로 받아들이는 會議로밖에 될 수 없다. 金日成은 이것을 자기가 朝鮮革命軍을 組織하였다고 歪曲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朝鮮革命의 進路〉라는 金日成의 연설도 李鍾洛이 한 연설을 歪曲한 것이며, 설령 기타 모든 戰略戰術이 당시에 있었더라면 그것은 李鍾洛에 의한 것이었다.

註 018
: 《조선전사》 권16, pp.150〜151.
註 019
: 위의 책 p.168 이하.
註 020
: 위의 책 pp.77〜78 이하.
註 021
: 《金日成評傅(續)》 p.107.
註 022
: 위의 책 p.137 이하.
註 023
: 위의 책 p.222 이하.
註 024
: 위의 책 p.253 이하.
註 025
: 위의 책 p.260 이하.
註 026
: 《金日成評傳》 p.272 이하.
註 027
: 위의 책 p.344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