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抗日遊擊隊

金日成은 1932년 4월 25일, 安圖縣 小沙河의 土器店골에서 反日人民遊擊隊, 즉 共產主義者의 隊伍인 抗日遊擊隊를 結成하였다 한다.028028 조선전사》 권17, p.92.닫기 金日成은 1931년 1월에 李鍾洛一派의 幹部가 檢擧된 직후인 3월에 伊通縣 孤楡樹에서 中國公安局에 逮捕된 듯하다.029029 國史編纂委員會, 앞의 책 1931년 3월, 5월호.닫기 그후 그는 하얼빈으로 갔다가 公主嶺 등을 거쳐 撫松縣城으로 가서 이곳의 土豪 張萬政의 庇護 밑에 있었다. 이 때 그는 前年에 桂永春 등과 같이 결성한 일이 있었던 南韓靑總 산하의 舊새날少年同盟員들과 武装作黨을 하였던 것이다.
1932년 1월, 金日成의 行悖를 다스리려 한 梁瑞鳳이 國民府의 朝鮮革命軍 高東雷 小隊를 撫松으로 파견하였을 때 그는 이 小隊를 夜襲하여 대원 10명을 전멸시키고 安圖方面으로 逃亡하였다.030030 李命英, 《權力의 歷史》(成均館大出版部, 1983) p.306.《金日成評傳(續)》(北韓硏究所, 1988) p.103 이하.닫기 金日成은 中國警察의 수사를 피하여 安圖縣 富爾河의 韓人農村에 1개월 반가량 잠복하였다가 小沙河 土器店골에 있었던 母親 康盤石의 집 근처에 가서 낮에는 잠복하고 야간에는 행동하는 변측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031031 《金日成評傳(續)》 p.108 이하.닫기 金日成은 이 舊새날少年同盟員 數名과 같이 있었는데, 5월에는 당시 小沙河 北쪽 大醬缸 에 있었던 中共安圖縣區委員會가 아니라 南쪽 安圖縣城에 있었던 中國人救國軍 于司令을 찾아 갔다. 그리고 초여름에 그는 西向하여 南滿 通化縣에 있었던 梁瑞鳳軍을 찾아서 그에게 항복하였던 것이다.032032 위의 책 穆漢章과 于司令의 節 및 南滿遊動의 節 p.113 이하.닫기 이상의 행적을 보면 金日成이 4월 25일에 反日人民遊擊隊를 조직하였다는 《조선전시》의 기술은 이를 善意的으로 해석하더라도 舊새날少年同盟員 數名과 4월경에 小沙河 근방에 있었다는 것으로밖에 되지 않는다. 梁瑞鳳의 朝鮮革命軍에 항복한 사실은 그가 당시 共產主義思想을 가지지 않았던 證左가 되는데 《조선전사》는 아래와 같은 조작된 金日成演說을 인용하여 마치 그가 共產主義者인 양 꾸미고 있다.

반일인민유격대의 창건은…반일민족통일전선로선과 맑스·레닌주의당 창건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게 될 것입니다.033033 《조선전사》 권17, p.106; 《金日成著作集Ⅰ》 pp.52〜53.닫기


註 028
: 조선전사》 권17, p.92.
註 029
: 國史編纂委員會, 앞의 책 1931년 3월, 5월호.
註 030
: 李命英, 《權力의 歷史》(成均館大出版部, 1983) p.306.《金日成評傳(續)》(北韓硏究所, 1988) p.103 이하.
註 031
: 《金日成評傳(續)》 p.108 이하.
註 032
: 위의 책 穆漢章과 于司令의 節 및 南滿遊動의 節 p.113 이하.
註 033
: 《조선전사》 권17, p.106; 《金日成著作集Ⅰ》 pp.5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