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명삼천리문학 제1집  
발행일1938년 01월 01일  
기사제목浿江冷  
필자李泰俊  
기사형태소설  
浿江冷
李泰俊
다락에는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 부벽루(浮碧樓)라, 빛낡은 편액(扁額)들이 걸려 있을 뿐, 새 한마리 앉아있지 않았다. 고요한 그 속을 드러서기가 그림이나 찟는 것같이 현(玄)은 축대 아래로만 어정거리며 다락을 우러러본다.
질퍽하게 굵은 기둥들, 힘 내닷는대로 밀어던진 첨차와 *가지의 깍음새들, 이조(李朝)의 문물(文物)다운 우직한 순정이 군대군대서 구수하게 풍겨나온다.
다락에 비겨 대동강은 너머나 차다. 물이 아니라 유리 같은 것이 부벽루에서도 한 뿀처럼 드러다 보힌다. 푸르기는 하면서도 마름(水草)의 포기 포기 흐늘거리는 것, 조약돌 사이 사이가 미꾸리라도 한마리 엎디엿기만 하면 숨쉬는 것까지 보힐 듯 싶다. 물은 푸르나 소리도 없다. 수도국 다리를 빠저, 청류벽(淸流壁)을 돌아서는 비단필이 훨적 펼처진 듯 질펀하게 깔려나갔는대, 하눌과 물은 함께 저녁놀에 물들이 아득-한 장미꽃밭으로 사라저버렸다. 연광정(鍊光亭) 앞으로부터 까믓까믓 널러있는 매생이와 수상선들, 하나도 움직여 보히지 않는다. 끝없는 대동벌에 점점히 놓인 구릉(丘陵)들과 함께 자못 유구한 맛이 난다.
현은 피이던 담배를 내여던지고 저고리 단초를 여미였다. 단풍은 이제부터 익기 시작하나 날씨는 어느듯 손이 시¦¬다.
『조선 자연은 왜 이다지 슬퍼 보힐가?』
현은 부여(扶餘)에 가서 낙화암(落花岩)이며 백마강(白馬江)의 호젓함을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21>
현은 평양이 십여 년만이다. 소설에서 평양장면을 쓰게 될 때마다, 이번에는 좀 새로 가보고 써야, 스케취를 해와야, 하고 베르기만 햇지, 한번도 그래서 와보지는 못하였다. 소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친구들도 가끔 놀러오라는 편지가 있었다. 학창때 사귄 벗들로, 이곳 부회의원이요 실업가인 김(金)도 있고, 어느 고등보통학교에서 조선어와 한문을 가리키는 박(朴)도 있것만, 그들의 편지에 한번도 용기를 내여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받은 박의 편지는 놀러오라는 말은 한마디도 씨여있지 않었다. 그러나 다른 때, 놀러오라는 말이 있던 편지보다 오히러 현의 마음을 끄을었다. - 내 시간이 반이 없어진 것은 자네도 짐작할걸세 편안하긴 허이. 그러나 전임으론 나가주고 시간으로나 다녀주기를 바라는 눈칠세. 남어지 시간이라야 그리 오래 지탕돼나갈 학과 같지는 안네. 그것 마저 없어지는 날 나도 그때 아조 고만둬버리러고 아직은 찌싯찌싯 붙어있네 - 하는 사연을 읽고는 갑재기 박을 가 만나주고 싶었다. 만나야만 할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이라도 한번 잡아주고 싶어 전보만 한장 치고 훌적 떠나 나러온 것이다.
정거장에 나온 박은 수염도 깎은 지 오래여 터부룩한대다 버릇처럼 자조 찡그러지는 비웃는 웃음은 전에 못보던 표쟁이었다. 그 다니는 학교에서만 찌싯찌싯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전체에서 긴치 않게 여기는, 찌싯찌싯 불어있는 존재 같았다. 현은 박의 그런 찌싯찌싯함에서 선뜻 자기를 느끼고 또 자기의 작품들을 느끼고 그만 더 울고싶게 괴로워졌다.
한참이나 붓들고 섰던 손목을 놓고, 그들은 우선 대합실로 드러갔다. 할말은 많은 듯하면서도 직거러 보고 싶은 말은 골라내일 수가 없었다. 이내 다시 일어나서 현은,
『나 좀 혼자 걸어보구싶네』
하였다. 그래서 박은 김을 만나가지고 대동강가에 있는 동일관(東一舘)이란 요정으로 나오기로 하고 현만이 모란봉으로 온 것이다.
오면서 자동차에서 시가도 가끔 내다보았다. 전에 본 기억이 없는 새 삘딍들이 꽤 많이 늘어섰다. 그중에 한가지 인상이 깊은 것은 어느 큰 거리 한뿌닥이에 벽돌공장도 아닐테오 감옥도 아닐터인데 시뻘건 벽돌만으로, 무슨 큰 분묘(墳墓)와<22> 같이 된 건축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현은 운전수에게 물어보니, 경찰서라고 했다.
또 한가지 이상하다 생각한 것은,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여자들의 머리수건이다. 운전수에게 물으니 그는 없어진 이유는 말하지 않고
『거, 잘 없어졌죠. 인전 평양두 서울과 별루 지지 않습니다』
하는, 매우 자긍하는 말투였다.
현은 평양여자들의 머리수건이 늘 보기좋았다. 현은 단순하면서도 힌 호접과 같이 살아 보혓고, 장미처럼 자연스런 무게로 한송이 얹힌 당기는, 그들의 악센트 명랑한 사투리와 함께 「피양내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였다. 그런 아름다움을 제고장에 와서도 구경하지 못하는 것은, 평양은 또 한가지 의미에서 폐허(廢墟)라는 서글픔을 주는 것이었다.
현은 을밀대(乙密臺)로 올라갈가 하다 비행장을 경계함인듯, 총에 창을 꽂아 든, 병정이 섯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냥 강가로 나려오고 말았다. 마침 노릿배 하나가 빈채가 나려오는 것을 불럿다. 주암산까지 올라갓다가 나려오자니까 거기는 비행장이 가까워 못 올라가게 한다고 한다. 그럼 노를 젓지는 말고 흘르는대로 동일관까지 가기로 하고 배를 탓다.
나무닢처럼 물 가는대로만 떠 가는 배는 낙조가 다 꺼저버리고 강물이 어두어서야 동일관에 다었다.
이 요리집은 강물에 내여민 바위를 의지하고 지어졌다. 뒷문에 배를 대이고 풍악소리 높은 밤 정자에 오르는 맛은, 비록 마음 어두운 현으로도 저윽히 흥취도연 해짐을 아니 느낄 수 없다.
『먹을 줄 몰으는 술이나 이번엔 사양치 말고 받어 먹자! 박을 위로해주자!』
생각했다.
박은 김을 다리고 와 벌서 두 기생으로 더부러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김의 면도자리 푸른 살진 볼과 기생들의 가벼운 옷자락을 보니 현은 기분이 다시 한번 개인다.
『이 사람 자네두 김군처럼 면도나 좀 허구 올게지?』
『허, 저런 색시들 반허게!』<23>
하고 박은 씩- 웃는다.
『그래 요즘 어떤가? 우리 김부회의원나리?』
『이 사람아 오래간만에 만나 히야까시부턴가?』
『자넨 참 늙지 안네그려! 우리 서울서 재작년에 만낫던가?』
『그러치 아마...내 그때 도시 시찰로 내지 갓다오던 길이니까...』
『그래 자네 서평양인지 동평양인지서 땅 노름에 돈 좀 뫘다데그려?』
『흥, 이 사람! 선비가 돈 말이 하관고?』
『별 수 있나? 먹어야 배부르데』
『먹게, 오늘 저녁엔 자네가 못 먹나 내가 못 먹이나 한번 해보세』
『난 옆에서 경평대항전 구경이나 헐가?』
『저이들은 응원하구요』
기생들도 박과 함게 말참네를 시작한다.
『시굴 기생들 우섭지?』
『우섭다니? 기생엔 여기가 서울 아닌가 금수강산 정기들이 다르네!』
기생들은 하나는 방긋 웃고, 하나는 새침한다. 방긋 웃는 기생을 보니, 현은 문득, 생각나는 기생이 하나 있다.
『여보게들?』
『그래』
『별서 열둬-해 됫네그러? 그때 나왔을 때 저 능라도에 가 어죽 쒀 먹던 생각 안나?』
『벌서 그렇게 됫나 참.』
『그때 그 기생이 이름이 뭐드라? 자네들 생각 안나나?』
『오- 그러치!』
비스듬이 벽에 기대였던 김이 놀라 일어나더니
『이거 정작 부를 기생은 안불럿네 그려!』
하고 손벽을 친다.
『아니, 그 기생이 여태 있나?』
『살앗지 그럼.』
『기생 노릇을 여태 해?』
『암!』
『오-라!』
하고 박도 그제야 생각나는 듯이 무릎을 친다.
그때도 현이 서울서 나려와서 이 세 사람이 능라도에 어죽노리를 채렸다. 두 기생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한 기생이 특히 현을 따뤄, 그때만해도 문학청년 기분이던, 현은 영월의 손수건에 시를 써주고 두리만 부벽루를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다 찍고<24> 하였었다.
『아니, 지금 나이 몇살일턴데 아직 기생 노릇을 해? 난 생각은 나두 이름두 잊었네.』
『그리게 이번엔 자네가 제발 좀 데리구 올라가게.』
『누군데요?』
하고 기생들이 뭇는다.
『참, 이름이 뭐드라?』
박도
『이름은 나두 생각 안 나는걸...』
하는데 뽀이가 온다.
『기생, 제일- 오랜 기생, 제일- 나이 많은 기생이 누구냐?』
뽀이는 멀둥히 생각하더니 대인다.
『관옥인가요? 영월인가요?』
『오! 영월이다. 영월이 곳 불러라.』
현은 저윽 으쓱해진다. 상이 들어왔다. 술잔이 돌아간다.
『그간 술 좀 뱃니?』
박이 현에게 잔을 보내며 뭇는다.
『웬걸...술이야 고학할 수 있던가 어디...』
『망할자식 가궁혀구나! 허긴 너이 따위들이 밤낮 글써야 무슨 덕분에 술 차레가 가겟니! 오늘 내 신세지...』
『아닌게 아니라..』
하고 김이 또 현에게 잔을 내여 밀더니
『현군도 인전 방향전환을 허게』
한다.
『방향전환이라니?』
『거 누구? 뭐래던가 동경가 글쓰는 사람 있지?』
『있지.』
『그 사람 선견이 있는 사람야!』
하고 김은 감탄한다.
『이 자식아 잔이나 받아라 듯기 싫다.』
하고 현은 김의 잔을 부리나케 마시고 돌려보낸다.
박이 다 눈두덩을 내려 쓸도록 모다 얼근해진 뒤에야 영월이가 드러섰다. 힌 저고리, 옥색치마, 머리도 가림자만 약간 옆으로 탓을 뿐, 시체 애들처럼 물 드리거나 지지거나 하지 않었다. 미다지 밑에 사쁜 앉더니 좌석을 휙 둘러본다. 김과 박은 어쩌나 보노라고 아모말도 않고 영월과 현의 태도만 번갈아 살핀다. 영월의 눈은 현에게서 무심히 스쳐지나, 박을 넘어 뛰어 김에게 머므르더니<25>
『영감 오래간만 이외다 그려』
하고 씽긋 웃는다.
『허! 자네 눈두 인전 무덧네 그려! 자넬 반가워 할 사람은 내가 아니냐.』
『기생이 정말 속으로 반가운 손님헌텐 인살 안한담니다.』
하고 슬적 다시 박을 거쳐 현에게 눈을 옴긴다.
『과연 명기로군! 척척 받음수가...』
하고 김이 먼저 잔을 드니 영월은 선듯 상머리에 나 앉으며 술병을 든다.
웃은 지 오래나 눈속은 그저 웃는 것이 옛모습일 뿐, 눈시울에 거므스럼하게 그림자가 깃드린 것이오 볼이 훌죽 꺼진 것이나 입술이 까시시 메마른 것은 너머나 세월이 자죽을 깊이 남기고 지나갓다.
『자네 나 모르겟나?』
현이 담배를 끄며 뭇는다.
『어서 잔이나 드시라우요.』
잔을 드는 현과 눈이 마조치자 영월은 술이 넘는 것도 모르고 얼굴을 붉힌다.
『자네도 세상사리가 고단한걸세 그려?』
『피차 일반인가 봅니다』
하고 현이 마시고 주는 잔에 가득히 붓는대로 영월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마신다.
『전엔 하-얀 나비 같은 수건을 썼더니...』
『참, 수건이 도루 쓰고퍼요』
『또 평양말을 더 또렷또렷하게 잘 했었는데...』
『손님들이 요센 서울말을 해야 좋아한담니다.』
『그깟놈들...그런데 박군? 어째 평양 와 수건 쓴걸 볼 수 없나?』
『걸 이 김부회 의원 영감께 여쭤볼 문젤세 이런 경세가(輕世家)들이 금령을 내렸다네.』
『어째서?』
『누가 아나. 비러먹을 자식들...』
『이 자식들아 너이야말루 비러먹을 자식들인게... 그까짓 수건 쓴게 보기 좋을건 뭬며 이 평양부내만해두 일년에 그 수건값 허구 당기값이 얼만지 알기나 허나?』
하고 김이 당당히 허리를 펴고 나앉는다.
『백만원이면? 문화가치를 모르는 자식들...』
『그러니까 너이 글쓰는 녀석들은 세상을 모르구 산단 말이다.』
『주저넘은 자식... 조선여자들이 뭘 남용을 해? 예편네들 모양 좀 내기루? 에폔넨 좀 고와야지』<26>
『돈이 드는걸...』
『흥! 그래 집안에서 죽두룩 일해, 새끼나 길러, 사내 뒤치개질해... 그리구 일년에 당기 한감 사매는게 과하다? 아서라 사내들 술값, 담배값은 얼만지 아나? 생활개선 그래 예펜네들 수건값이나 당기값이나 조려먹구* 요 푼푼치 못한 경제가들아? 저인 남이할 것 다허구...』
『망할 자식 말버릇 좀 고쳐라...이 자식아 술이란 실 사회선 얼마나 필요한 건지 아니?』
『안다. 술만 필요허나? 고유한 문환 필요치 않구? 돼지 같은 자식들... 너이가 진줄 알 수 있니...허...』
『히도오 바가니 스르나 고노야로...』
『너 이따윈 좀 바까니시데모 이이...』
『나니?』
『나닌 다 뭐 말라 빠진거냐? 네 술좀 먹기루 이 자식 내 헐말 못헐놈 아니다』
하고 현은 트림을 한다.
『이 사람들 고걸 먹구 벌서 취했네들 그려.』
박이 이쑤시개를 놓고 다시 잔을 현에게 내민다. 김은 잠작고 안주를 짐는 체 한다.
오래 해먹어서 손님들 기분에 눈치빠른 영월은 뽀이를 불르더니 장고를 가져오게 하였다. 척 장고채를 뽑아잡고 저쪽손으로 먼저 장고 전두리를 뚱땅 울려보더니
『어-따 조오쿠나 이십-오-현 탄-야월...』
하고 불러내기 시작한다. 현은 물그럼히 영월의 핏줄 일어선 목을 건너다보며 조끼단추를 끌렀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머리를 뚜드려 본다. 그러나 자기에겐 리듬이 생기지 않는다.
『에-헹-에- 헤이야-하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하고 받는 사람은 김뿐이다. 현은 더욱 가슴속에서만 끓는다. 이런땐 소리라도 한마디 불러내였으면 얼마나 속이 시원하랴 싶어진다. 기생들도 다른 기생들은 잠잠히 앉아 영월의 입만 쳐다본다. 소리가 끝나자 박은
『수고햇네』
하고 영월에게 술 한잔을 권하더니 가사를 하나 불으라 청한다. 영월은 사양치 않고 밀어 놓았던 장고를 다시 당기어 안더니
『일조-오-나앙군...』
불러내인다. 박은 입을 씻고 씻고 하더니 곡조는 서투르나 그래도 꽤 어울리게 이런 시 한구를 읊어서<27> 소리를 받는다.
『각하-안- 산-진 수궁처...임흠정- 가고옥- 역난위를...』
박은 눈물이 글성해 후- 한숨으로 끝을 맺는다.
자리는 다시 찬비가 지나간 듯 호젓해진다. 김은 뽀이를 불으더니 유성기를 가져오라 했다. 째쓰를 틀어 놓더니 그제야 다른 두 기생은 저이 세상인듯, 번쨔 김과 마주잡고 딴쓰를 추는 것이다.
『영월아!』
영월은 잠작고 현의 곁으로 온다.
『난 자넬 또 만날 줄은 몰랏네 반갑네.』
『저 같은걸 누가 데려가야죠?』
『눈이 너머 높은게지?』
『네?』
유성기 소리에 잘 들이지 않는다.
『눈이 너머 높은게야?』
『천만에...그간 많이 상허섯세요.』
『응?』
『많이 상허섯세요.』
『나?』
『네』
『자네가 그리워서...』
『말슴만이라두 고맙습니다.』
『허!』
딴쓰가 한 곡조 끝났다. 김은 자리에 앉으며 현더러
『기미모 오도레』
한다.
『난 출줄도 모르네 기생을 불로놓고 딴쓰나 하는 친구들은 내 일직부터 모욕하는 발세.』
『자네처럼 마게오시미 쓰요이한 사람두 없을걸세. 못추면 그냥 못 춘대지...』
『흥! 지기 싫여서가 아니라 기생이란 조선에 국보적 존잴세. 끄러안구 궁댕이짓이나 허구 유행가 나부랭이나 비명을 허구 그게 기생들이며 그게 놀줄 아는 사람들인가? 아마 우리 영월인 딴쓸 못할걸세. 못하는게 아니라 안할 걸?』
『아이! 영월언니가 딴쓸 어떻게 잘하게요』
하고 다른 기생이 핼깃 쳐다보며 가로챈다.
『자네두 그래 딴쓸허나?』
『잘 못한답니다』
『글세 잘허구 못허구간에?』
『어쩜니까? 이런 손님 저런 손님 다 비윌 마추쟈니까요』<28>
『건 왜?』
『돈을 벌어야죠.』
『건 그리 벌기만해 뭘허누?』
『기생일수록 제 돈이 있어야겠읍니다.』
『어쩨?』
『생각해보시구려.』
『모르겠는데? 돈 많은 사내헌테 가면 되지 안나?』
『돈 많은 사내가 변심않구 나 하나만 다리고 사나요?』
『그런가?』
『본처나 되면 아무리 남편이 오입을 해두 늙으면 돌아오겠지 허구 자식락이나 보면서 살지 않어요? 기생이야 그 사람 하나만 바라고 갔는데 남자가 않드러와봐요? 쳐다볼건 바름팍만 아니야요? 뭘 바라고 삽니까? 그리게 살림 드러갔다 오래 사는 기생이 「멫」됩니까? 우리 기생은 제가 돈을 뫄서 돈없는 사낼 얻는게 제 일이랍니다.』
『야! 언즉 시야라 거 반가운 소리구나!』
하고 박이 나앉는다. 그리고
『난 한푼 없는 놈이다 직업두 인전 벤벤치 못하다 내 예펜네라야 늙어서 박아지두 긁지 않을거구 자네 돈뫘으면 나허구 살세?』
하고 영월의 손을 끌어 당긴다.
『이 사람 영월인 현군걸세』
『참, 돈 가진 기생이나 얻는 수밖에 없네 인전...』
하고 현도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자네들 이제부턴 실속채려야하네』
하고 김은 힐긋 현의 눈치를 본다.
『어떻게 채려야 실속인가?』
『팔릴 글을 쓰란 말일세 자네들 쓰는걸 인제부터 누가 알아야 읽지 앉나? 나두 가끔 자네 이름이니 좀 읽어볼가해두 요미니꾸꿋데...도-모이깡...』
『아니꺼운 자식... 너이따윈 안 읽어두 좋다. 그래 방향전환을... 뭐...어디 가 글쓰는 놈이 선견이구 어쩌구 하는구나? 똥내나는 자식...』
『나니?』
김이 빨근해진다. 김이 빨근해지는 바람에 현도 다시 농담기가 걷히고 눈이 뻔쩍 빛난다.
『더러운 자식! 나닌 무슨말라빠진...』<29>
하더니 현은 술을 깨이려고 마시던 사이다겊을 김에게 사이다채 던져버린다. 깨여지고 뛰고 하는 것은 유리병만이 아니다. 기생들이 그리로 쏠린다. 뽀이들도 드러온다.
『이자식? 되나 안되나 우린 이래뵈두 예술가다! 예술가 이상이다. 이자식...』
하고 현의 두리두리해진, 눈엔 눌물이 펑- 어리고 만다.
『이런데서 뭘...이 사람 취햇네 그려. 나가 바람좀 쐬세』
하고 박이 부산한 자리에서 현을 이끌어 내인다. 현은 담배를 하나 집으며 복도로 나왔다.
『이 사람아? 김군 말쯤을 고지식하게 탄할게 뭔가?』
『후...』
『그까짓 무슨 소용이야...』
『내가 취햇나보이... 자넨 드러가 보게...』
현은 한참 난간에 의지해 섰다가 슬립퍼를 신은 채 강가로 나려섰다. 강에는 배 하나 지나가지 않는다. 바람은 없으나 등곬이 오싹해진다. 강가에 흩어진 나무닢들은 서릿발이 끼쳐 은종이처럼 번뜩번뜩인다. 번뜩이는 것을 찾아 하나씩 밟아본다.
『이상견빙지(履霜堅冰至)...』
주역(周易)에 있는 말이 생각난다. 서리를 밟거던 그 뒤에 어름이 올 것을 각오하란 말이다. 현은 술이 홱 깨여진다. 저고리를 여미나 찬 기운은 품속에 사모친다. 담배를 피려하다 성냥이 없다.
『이상견빙지...이상견빙지...』
밤 강물은 시체와 같이 차고 고요하다.
-乙丑 11월초 8일- <30>
<2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