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국을 정벌하다 ( 185년 02월(음) )

2월에 파진찬(波珍湌)043043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4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해간(海干), 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했다.닫기구도(仇道)044044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닫기와 일길찬(一吉湌)045045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7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을길간(乙吉干)이라고도 했다.닫기구수혜(仇須兮)046046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일길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 우군주(右軍主)로서 구도(仇道)와 함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닫기를 좌·우 군주(軍主)047047 신라 초기에 兵權을 맡은 관리로, 左軍主와 右軍主를 말한다. 이것이 신라에서 軍主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시초였다. 한편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 마립간 6년 2월조에서는 이사부를 悉直州 軍主로 삼은 것이 군주 명칭의 시작이었다고 하였다. 지증왕 6년에 설치된 군주는 州의 장관으로서 일정지역에 주둔하면서 행정·군사를 총괄하던 常設官職으로서의 군주인 반면에 벌휴왕 2년의 左·右軍主는 지방에 장기간 주둔하지 않고 有事時에만 군대를 통솔하는 중앙의 임시적인 관직이 아니었을까 한다.닫기로 삼아 소문국(召文國)048048 《삼국사기》 권34, 지리1, 상주(尙州)에 따르면, 소문국은 경덕왕(景德王) 때에 문소군(聞韶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의성부(義城府)가 되었다. 소문국이 위치한 의성 지역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해당될 뿐 아니라 신라가 3세기 초엽에 이르러 낙동강 이동과 소백산맥 이남의 경상북도 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데 전초지가 되었던 곳이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143쪽). 소문국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주보돈, 《초기국가 소문국과 그 향방》, 《인하사학》 10, 인하역사학회, 2003이 참고가 된다.닫기을 정벌하였다. 군주(軍主)의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049049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6년(505)조에 따르면, 이해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은 것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벌휴이사금대와 지증왕대의 군주가 명칭은 같지만 성격은 달랐던 것 같다. 곧 전자가 지방에 장기간 주둔하지 않고 유사시에만 군대를 통솔하는 중앙의 임시적인 관직이라면, 후자는 주(州)의 장관으로서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던 상설 관직인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0쪽).닫기

註 043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4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해간(海干), 파미간(破彌干)이라고도 했다.
註 044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
註 045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7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을길간(乙吉干)이라고도 했다.
註 046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일길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 우군주(右軍主)로서 구도(仇道)와 함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다.
註 047
신라 초기에 兵權을 맡은 관리로, 左軍主와 右軍主를 말한다. 이것이 신라에서 軍主의 이름을 쓰기 시작한 시초였다. 한편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 마립간 6년 2월조에서는 이사부를 悉直州 軍主로 삼은 것이 군주 명칭의 시작이었다고 하였다. 지증왕 6년에 설치된 군주는 州의 장관으로서 일정지역에 주둔하면서 행정·군사를 총괄하던 常設官職으로서의 군주인 반면에 벌휴왕 2년의 左·右軍主는 지방에 장기간 주둔하지 않고 有事時에만 군대를 통솔하는 중앙의 임시적인 관직이 아니었을까 한다.
註 048
《삼국사기》 권34, 지리1, 상주(尙州)에 따르면, 소문국은 경덕왕(景德王) 때에 문소군(聞韶郡)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고려시대에 의성부(義城府)가 되었다. 소문국이 위치한 의성 지역은 경상북도의 중앙에 해당될 뿐 아니라 신라가 3세기 초엽에 이르러 낙동강 이동과 소백산맥 이남의 경상북도 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데 전초지가 되었던 곳이다(이형우, 《신라초기국가형성사연구》, 영남대학교출판부, 2000, 143쪽). 소문국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는 주보돈, 《초기국가 소문국과 그 향방》, 《인하사학》 10, 인하역사학회, 2003이 참고가 된다.
註 049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지증마립간 6년(505)조에 따르면, 이해에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은 것이 처음이라고 하였다. 아마도 벌휴이사금대와 지증왕대의 군주가 명칭은 같지만 성격은 달랐던 것 같다. 곧 전자가 지방에 장기간 주둔하지 않고 유사시에만 군대를 통솔하는 중앙의 임시적인 관직이라면, 후자는 주(州)의 장관으로서 행정과 군사를 총괄하던 상설 관직인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0쪽).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정치>행정>관직>군사관직
색인어
이름 : 구도,구수혜
국명 : 소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