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를 부곡성주로 좌천시키다 ( 190년 08월(음) )

7년(190) 가을 8월에 백제가 서쪽 변경의 원산향(圓山鄕)058058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용궁현(龍宮縣) 건치연혁에 따르면, 이곳을 신라시대에 원산(園山)이라고도 불렀다. 이 기록에 주목해서 원산향의 위치를 경북 예천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83, 47쪽 및 천관우, 《고조선사·삼한사연구》, 일조각, 1989, 302쪽).닫기을 습격했고, 또 진격해서 부곡성(缶谷城)059059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7, 의흥현(義興縣) 속현에 부계현(缶溪縣)이 현 남쪽 31리에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부림현(缶林縣)이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 주목해서 부곡성을 경북 군위군 부계면 일대로 보기도 하는 데(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83, 47쪽 | 천관우, 《고조선사·삼한사연구》, 일조각, 1989, 302쪽), ‘부(缶)’자가 같다는 것 외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므로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닫기을 포위했다. 구도(仇道)060060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닫기가 굳센 기병 5백 명을 거느리고 그들을 공격하니 백제 군사가 거짓으로 달아났다. 구도가 쫓아가 와산(蛙山)061061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탈해이사금 8년(64), 10년, 19년(75), 20년조에 백제와의 교전지 와산성(蛙山城)이 나온다. 문맥상 같은 곳으로 생각되며, 구양성과도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6, 보은현(報恩縣) 산천조에 ‘와산(蛙山)’이 나와 지금의 충북 보은군 보은읍으로 비정된다.닫기에 이르렀다가 백제에 패하였다.062062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초고왕 25년 8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닫기 왕은 구도가 실책했다고 해서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시키고 설지(薛支)를 좌군주(左軍主)로 삼았다.

註 058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용궁현(龍宮縣) 건치연혁에 따르면, 이곳을 신라시대에 원산(園山)이라고도 불렀다. 이 기록에 주목해서 원산향의 위치를 경북 예천으로 비정하기도 한다(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83, 47쪽 및 천관우, 《고조선사·삼한사연구》, 일조각, 1989, 302쪽).
註 059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7, 의흥현(義興縣) 속현에 부계현(缶溪縣)이 현 남쪽 31리에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부림현(缶林縣)이었다고 한다. 이 기록에 주목해서 부곡성을 경북 군위군 부계면 일대로 보기도 하는 데(이병도, 《삼국사기》 상, 을유문화사, 1983, 47쪽 | 천관우, 《고조선사·삼한사연구》, 일조각, 1989, 302쪽), ‘부(缶)’자가 같다는 것 외에 명확한 근거가 없으므로 신중한 접근을 요한다.
註 060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
註 061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탈해이사금 8년(64), 10년, 19년(75), 20년조에 백제와의 교전지 와산성(蛙山城)이 나온다. 문맥상 같은 곳으로 생각되며, 구양성과도 가까운 곳이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6, 보은현(報恩縣) 산천조에 ‘와산(蛙山)’이 나와 지금의 충북 보은군 보은읍으로 비정된다.
註 062
《삼국사기》 권23 백제본기 초고왕 25년 8월조에 동일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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