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우로와 이음을 보내 가야를 공격하는 포상8국을 물리치다 ( 209년 07월(음) )

14년(209) 가을 7월에 포상8국(浦上八國)001001 포상8국(浦上八國): 이 기사에 나오는 포상8국과 가라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이 외에도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이하 열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5 피은제8 물계자조(이하 유사)에 있다. 이중 유사에는 8국 중 3국[보라국(保羅國)·고자국(古自國)·사물국(史勿國)]의 이름이 나오고, 열전에는 3년 뒤 다시 공격해 온 3국[골포(骨浦)·칠포(漆浦)·고사포(古史浦)]의 이름이 적시되어 있다. 이중 고사포와 고자국은 동일한 이름의 이표기로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었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어서 모두 5개국의 이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름이 나온 나머지 4국 중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로 비정되는 골포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의 칠포국, 경상남도 사천시의 사물국은 위치 비정에 크게 이견이 없다. 마지막 보라국은 전라남도 나주의 발라(發羅)로 보기도 하고 섬진강 하구 밖에 위치한 문모라(汶慕羅) 섬으로 비정하는 견해 등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한편 열전에 침략을 당하는 쪽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아라국이 8국 중 하나로 8국의 가라 공격을 주도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金泰植, 58쪽).
〈참고문헌〉
白承忠, 1989,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수로집단의 등장과 浦上八國의 亂을 중심으로-」, 『釜大史學』 13
金泰植, 1994, 「咸安 安羅國의 成長과 變遷」, 『韓國史硏究』 86
宣石悅, 1997, 「浦上八國의 阿羅加耶 侵入에 관한 考察-6세기 중엽 남부가야제국 동향과 관련하여-」, 『加羅文化』 14
남재우, 1998, 「安邪國의 성장과 대외관계 연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白承玉, 2001, 「加耶 各國의 成長과 發展에 관한 硏究」, 부산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권주현, 2011, 「 『삼국사기』에 보이는 4~5세기의 加耶와 삼국과의 관계」, 『新羅文化』 38
연민수, 2015, 「변진시대 가락국의 성장과 외교-포상팔국의 침공과 관련하여-」, 『韓日關係史硏究』 51
정상희, 2018, 「포상팔국 전쟁의 개전(開戰)시기와 전쟁양상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현실』 110
닫기
이 가라(加羅)002002 가라(加羅):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에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아라(阿羅)[안라(安羅)]가 포상8국의 공격을 받고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이 가라를 아라가야, 곧 안라국으로 보기도 하나, 대체로 전기 가야의 맹주국적 위치에 있었던 금관가야일 것으로 보고, 금관가야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변진 소국들 중 8국이 금관가야를 공격한 것으로 일반적이다. 나해이사금 6년(201) 2월에 가야가 화친을 청해 온 것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여길 수 있다. 또 이 포상8국의 침입에 신라의 도움을 받은 결과 나해이사금 17년(212) 가야가 왕자를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고 하겠다.닫기를 공격할 것을 모의하자, 가라 왕자가 〔신라에〕 와서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 석우로(昔于老)003003 석우로(昔于老): 우로는 본서 권45 석우로전에 의하면 석씨로 신라 10대 왕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주에 각간 수로(水老)의 아들이라는 이설도 실려 있어 출신에 여러 전승이 있는 듯하다. 또 나해이사금에게는 이음(利音)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그와 우로의 관계도 논란이 되었다. 석우로와 이음의 관계는 본서 나해이사금 12년(207) 정월조 기사의 이음에 대한 주석 참조.닫기와 이벌찬(伊伐湌)004004 이벌찬(伊伐湌):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1관등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닫기 이음(利音)005005 이음(利音): 나해이사금의 아들로, 생몰년은 ?~220년(나해이사금 25)이다. 형제인 석우로와 함께 군사적 활동을 많이 하였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동왕 12년(207) 정월조의 이음에 대한 주석 참조.닫기에게 6부(部)의 병사006006 6부(部)의 병사: 신라 왕경의 6부인으로 편성된 부대로서 신라 초기의 국가적 성장과정에서 대외적인 팽창의 주역이면서 핵심적인 군사력으로 기능했다고 파악되며, 왕경 이외의 주민으로 구성된 부대와는 명백히 구별되고 있다(李文基, 1997,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83~88쪽). 이 6부병을 6정(停) 중 대당(大幢)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李基白‧李基東, 1982, 『韓國史講座Ⅰ』, 一潮閣, 226쪽). 한편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에는 6부의 병사 이외에도 인근 군(郡)의 병사도 함께 데리고 갔다고 되어있다. 당시 군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인근 군의 병사는 신라에 복속되었지만 자치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던 소국들의 군사로 볼 수 있다.닫기들을 거느리고 가서 가라를 구해주라고 명령하였다. 〔석우로와 이음은〕 포상8국의 장군들을 죽이고, 〔포상8국에〕 포로로 잡혀갔던 〔가라인〕 6,000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007007 포상8국(浦上八國)이 … 돌려주었다: 이 포상8국과의 전쟁에 대한 내용은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이하 열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5 피은제8 물계자조(이하 유사)에 보다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다. 본서 물계자전에서는 도움을 요청한 것이 가라가 아니라 아라(阿羅)라 되어 있고, 이음이 날음(捺音)으로 적혀있고, 석우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3년 후 골포(骨浦)·칠포(漆浦)·고사포(古史浦) 세 나라가 다시 갈화성(竭火城) 공격을 해 오고 이것을 패퇴시키는 내용도 추가되어 있다. 유사에서는 시기가 본 기사보다 3년 늦은 212년의 일로 되어 있고, 8국 중 보라국(保羅國)·고자국(古自國)·사물국(史勿國)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측 장수로 태자 이음과 장군 일벌이 등장하는데, 이 일벌을 석우로의 지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서와 유사의 포상팔국 전쟁 시기가 3년 차이가 나고, 본서 초기 기록의 기년에 대한 신빙성 문제와 연동되어 나해이사금대 기사들의 기년이 실제보다 소급되어 있다는 입장도 있어서, 포상8국 전쟁이 있었던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크게 사료의 기년을 그대로 믿는 3세기 초반설부터 기년을 조정해야 된다고 보는 입장의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설, 4세기 말~5세기 초설, 6세기 중엽설, 7세기 초반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정상희, 28~40쪽 참조). 대체로 4세기 전반으로 보는 입장이 나해이사금대 기사의 기년 조정과 관련하여 지지를 받는 편이다.
〈참고문헌〉
白承忠, 1989,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수로집단의 등장과 浦上八國의 亂을 중심으로-」, 『釜大史學』 13
金泰植, 1994, 「咸安 安羅國의 成長과 變遷」, 『韓國史硏究』 86
宣石悅, 1997, 「浦上八國의 阿羅加耶 侵入에 관한 考察-6세기 중엽 남부가야제국 동향과 관련하여-」, 『加羅文化』 14
남재우, 1998, 「安邪國의 성장과 대외관계 연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白承玉, 2001, 「加耶 各國의 成長과 發展에 관한 硏究」, 부산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권주현, 2011, 「 『삼국사기』에 보이는 4~5세기의 加耶와 삼국과의 관계」, 『新羅文化』 38
연민수, 2015, 「변진시대 가락국의 성장과 외교-포상팔국의 침공과 관련하여-」, 『韓日關係史硏究』 51
정상희, 2018, 「포상팔국 전쟁의 개전(開戰)시기와 전쟁양상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현실』 110
닫기

註 001
포상8국(浦上八國): 이 기사에 나오는 포상8국과 가라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이 외에도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이하 열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5 피은제8 물계자조(이하 유사)에 있다. 이중 유사에는 8국 중 3국[보라국(保羅國)·고자국(古自國)·사물국(史勿國)]의 이름이 나오고, 열전에는 3년 뒤 다시 공격해 온 3국[골포(骨浦)·칠포(漆浦)·고사포(古史浦)]의 이름이 적시되어 있다. 이중 고사포와 고자국은 동일한 이름의 이표기로 지금의 경상남도 고성군에 있었던 고자미동국(古資彌凍國)이어서 모두 5개국의 이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이름이 나온 나머지 4국 중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로 비정되는 골포국,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의 칠포국, 경상남도 사천시의 사물국은 위치 비정에 크게 이견이 없다. 마지막 보라국은 전라남도 나주의 발라(發羅)로 보기도 하고 섬진강 하구 밖에 위치한 문모라(汶慕羅) 섬으로 비정하는 견해 등이 있지만 분명하지 않다. 한편 열전에 침략을 당하는 쪽으로 기록되어 있는 경상남도 함안군의 아라국이 8국 중 하나로 8국의 가라 공격을 주도했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金泰植, 58쪽).
〈참고문헌〉
白承忠, 1989,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수로집단의 등장과 浦上八國의 亂을 중심으로-」, 『釜大史學』 13
金泰植, 1994, 「咸安 安羅國의 成長과 變遷」, 『韓國史硏究』 86
宣石悅, 1997, 「浦上八國의 阿羅加耶 侵入에 관한 考察-6세기 중엽 남부가야제국 동향과 관련하여-」, 『加羅文化』 14
남재우, 1998, 「安邪國의 성장과 대외관계 연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白承玉, 2001, 「加耶 各國의 成長과 發展에 관한 硏究」, 부산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권주현, 2011, 「 『삼국사기』에 보이는 4~5세기의 加耶와 삼국과의 관계」, 『新羅文化』 38
연민수, 2015, 「변진시대 가락국의 성장과 외교-포상팔국의 침공과 관련하여-」, 『韓日關係史硏究』 51
정상희, 2018, 「포상팔국 전쟁의 개전(開戰)시기와 전쟁양상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현실』 110
註 002
가라(加羅):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에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안군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는 아라(阿羅)[안라(安羅)]가 포상8국의 공격을 받고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이 가라를 아라가야, 곧 안라국으로 보기도 하나, 대체로 전기 가야의 맹주국적 위치에 있었던 금관가야일 것으로 보고, 금관가야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변진 소국들 중 8국이 금관가야를 공격한 것으로 일반적이다. 나해이사금 6년(201) 2월에 가야가 화친을 청해 온 것이 바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여길 수 있다. 또 이 포상8국의 침입에 신라의 도움을 받은 결과 나해이사금 17년(212) 가야가 왕자를 볼모로 보내게 되었다고 하겠다.
註 003
석우로(昔于老): 우로는 본서 권45 석우로전에 의하면 석씨로 신라 10대 왕 나해이사금(奈解尼師今)의 아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주에 각간 수로(水老)의 아들이라는 이설도 실려 있어 출신에 여러 전승이 있는 듯하다. 또 나해이사금에게는 이음(利音)이라는 아들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그와 우로의 관계도 논란이 되었다. 석우로와 이음의 관계는 본서 나해이사금 12년(207) 정월조 기사의 이음에 대한 주석 참조.
註 004
이벌찬(伊伐湌): 신라 경위 17관등 중 제1관등이다. 본서 권1 신라본기1 유리이사금 9년(32)조의 이벌찬에 대한 주석 참조.
註 005
이음(利音): 나해이사금의 아들로, 생몰년은 ?~220년(나해이사금 25)이다. 형제인 석우로와 함께 군사적 활동을 많이 하였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동왕 12년(207) 정월조의 이음에 대한 주석 참조.
註 006
6부(部)의 병사: 신라 왕경의 6부인으로 편성된 부대로서 신라 초기의 국가적 성장과정에서 대외적인 팽창의 주역이면서 핵심적인 군사력으로 기능했다고 파악되며, 왕경 이외의 주민으로 구성된 부대와는 명백히 구별되고 있다(李文基, 1997, 『新羅兵制史硏究』, 一潮閣, 83~88쪽). 이 6부병을 6정(停) 중 대당(大幢)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李基白‧李基東, 1982, 『韓國史講座Ⅰ』, 一潮閣, 226쪽). 한편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에는 6부의 병사 이외에도 인근 군(郡)의 병사도 함께 데리고 갔다고 되어있다. 당시 군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인근 군의 병사는 신라에 복속되었지만 자치적인 성격을 유지하고 있던 소국들의 군사로 볼 수 있다.
註 007
포상8국(浦上八國)이 … 돌려주었다: 이 포상8국과의 전쟁에 대한 내용은 본서 권48 열전8 물계자전(勿稽子傳)(이하 열전)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제5 피은제8 물계자조(이하 유사)에 보다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나 조금씩 다른 부분도 있다. 본서 물계자전에서는 도움을 요청한 것이 가라가 아니라 아라(阿羅)라 되어 있고, 이음이 날음(捺音)으로 적혀있고, 석우로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3년 후 골포(骨浦)·칠포(漆浦)·고사포(古史浦) 세 나라가 다시 갈화성(竭火城) 공격을 해 오고 이것을 패퇴시키는 내용도 추가되어 있다. 유사에서는 시기가 본 기사보다 3년 늦은 212년의 일로 되어 있고, 8국 중 보라국(保羅國)·고자국(古自國)·사물국(史勿國)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 측 장수로 태자 이음과 장군 일벌이 등장하는데, 이 일벌을 석우로의 지위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서와 유사의 포상팔국 전쟁 시기가 3년 차이가 나고, 본서 초기 기록의 기년에 대한 신빙성 문제와 연동되어 나해이사금대 기사들의 기년이 실제보다 소급되어 있다는 입장도 있어서, 포상8국 전쟁이 있었던 시기가 언제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다. 크게 사료의 기년을 그대로 믿는 3세기 초반설부터 기년을 조정해야 된다고 보는 입장의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설, 4세기 말~5세기 초설, 6세기 중엽설, 7세기 초반설 등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었다(정상희, 28~40쪽 참조). 대체로 4세기 전반으로 보는 입장이 나해이사금대 기사의 기년 조정과 관련하여 지지를 받는 편이다.
〈참고문헌〉
白承忠, 1989, 「1~3세기 가야세력의 성격과 그 추이-수로집단의 등장과 浦上八國의 亂을 중심으로-」, 『釜大史學』 13
金泰植, 1994, 「咸安 安羅國의 成長과 變遷」, 『韓國史硏究』 86
宣石悅, 1997, 「浦上八國의 阿羅加耶 侵入에 관한 考察-6세기 중엽 남부가야제국 동향과 관련하여-」, 『加羅文化』 14
남재우, 1998, 「安邪國의 성장과 대외관계 연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白承玉, 2001, 「加耶 各國의 成長과 發展에 관한 硏究」, 부산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권주현, 2011, 「 『삼국사기』에 보이는 4~5세기의 加耶와 삼국과의 관계」, 『新羅文化』 38
연민수, 2015, 「변진시대 가락국의 성장과 외교-포상팔국의 침공과 관련하여-」, 『韓日關係史硏究』 51
정상희, 2018, 「포상팔국 전쟁의 개전(開戰)시기와 전쟁양상에 대한 재검토」, 『역사와 현실』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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