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묘에 제사지내고 사면한 후 구도를 갈문왕으로 봉하다 ( 263년 02월(음) )

2월에 몸소 국조묘(國祖廟)204204 시조묘(始祖廟)를 말한다. 시조묘는 ‘조묘(祖廟)’ ‘선조묘(先祖廟)’ ‘조고묘(祖考廟) 등으로 표기되었다(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171쪽). 미추왕이 즉위 의례의 하나로 친히 제사지냈던 시조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말한다(채미하,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2008, 65쪽).닫기에 제사 지내고 크게 사면하였다. 죽은 아버지 구도(仇道)205205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닫기를 갈문왕(葛文王)206206 갈문왕은 왕위계승권이 없는 준왕(準王)과 같은 존재로서 왕과의 일정한 관계를 기준으로 하여 책봉되었다. 곧 신라의 지배층인 왕족과 왕비족을 중신으로 한 사회적·정치적 관계를 표현해주는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경향성도 변화하였다. 신라 초기 박씨왕 시대에는 왕비의 아버지가 주로 갈문왕에 책봉되었고, 눌지왕 이후 마립간 시기에는 왕의 동생이 갈문왕에 책봉되었다. 그러다가 태종무열왕 이후에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추봉적(追封的) 의미의 갈문왕제만이 유지되었다(이기백, 「신라시대의 갈문왕」,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이외에 송은정, 「신라 상대 갈문왕의 성격과 변화」, 《숙명 한국사론》 2, 1996에서도 갈문왕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닫기으로 봉하였다.207207 미추왕이 즉위 의례로 국조묘에 제사한 뒤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으로 추봉한 것은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김씨족의 정통성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취한 상징적인 조치였다(장창은,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2008, 71쪽).닫기

註 204
시조묘(始祖廟)를 말한다. 시조묘는 ‘조묘(祖廟)’ ‘선조묘(先祖廟)’ ‘조고묘(祖考廟) 등으로 표기되었다(최광식, 《고대한국의 국가와 제사》, 한길사, 1994, 171쪽). 미추왕이 즉위 의례의 하나로 친히 제사지냈던 시조란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말한다(채미하, 《신라 국가제사와 왕권》, 혜안, 2008, 65쪽).
註 205
구도는 김알지(金閼智)의 후손으로 나중에 김씨로서 최초로 왕위에 오르는 미추이사금(味鄒尼師今)의 아버지이다. 아달라이사금 19년(172)에 파진찬에 올라 벌휴이사금 2년(185)에는 좌군주(左軍主)로서 의성의 소문국(召文國)을 정벌하였고, 같은 왕 5년(188)과 6년에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다음해(170년) 와산(蛙山)에서 벌어진 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부곡성주(缶谷城主)로 좌천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미추왕이 즉위 2년(263)에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하였다.
註 206
갈문왕은 왕위계승권이 없는 준왕(準王)과 같은 존재로서 왕과의 일정한 관계를 기준으로 하여 책봉되었다. 곧 신라의 지배층인 왕족과 왕비족을 중신으로 한 사회적·정치적 관계를 표현해주는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경향성도 변화하였다. 신라 초기 박씨왕 시대에는 왕비의 아버지가 주로 갈문왕에 책봉되었고, 눌지왕 이후 마립간 시기에는 왕의 동생이 갈문왕에 책봉되었다. 그러다가 태종무열왕 이후에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추봉적(追封的) 의미의 갈문왕제만이 유지되었다(이기백, 「신라시대의 갈문왕」,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이외에 송은정, 「신라 상대 갈문왕의 성격과 변화」, 《숙명 한국사론》 2, 1996에서도 갈문왕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을 시도하였다.
註 207
미추왕이 즉위 의례로 국조묘에 제사한 뒤 죽은 아버지 구도를 갈문왕으로 추봉한 것은 김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른 김씨족의 정통성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 취한 상징적인 조치였다(장창은, 《신라 상고기 정치변동과 고구려 관계》, 신서원, 2008, 71쪽).
주제분류
사회>의례>제사>조상신
정치>법률>형법>석방·사면
사회>사회조직>신분>관등
색인어
이름 : 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