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에서 망제를 지내고, 낙랑과 대방이 복속하다 ( 300년 03월(음) )

〔3년(300)〕 3월에 우두주(牛頭州)001001 우두주(牛頭州): 우수주(牛首州), 수약주(首若州)라고도 하며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지역이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나해이사금 27년(222) 10월조에 백제가 신라의 우두주를 공격해왔다는 기사를 볼 때, 일찍부터 신라의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본서 권35 잡지4 지리2 삭주조에 의하면 선덕왕 6년(637)에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고 하므로, 우두주라는 이름은 637년 무렵부터 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이때에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여겨지므로, 이 기사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있다.닫기에 이르러 태백산(太白山)에서 망제(望祭)002002 망제(望祭):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해가 있을 때 왕후(王侯)가 영내의 명산과 대천 혹은 바다를 멀리에서 바라보며 재앙을 물리쳐 주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닫기를 지냈다.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003003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 낙랑과 대방은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각각 313년과 314년에 없어진 중국 군현이므로, 이 기사에서 신라에 항복하여 복속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라 보기 힘들다. 따라서 3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낙랑군과 대방군에 소속된 일부 지역이 이탈하여 신라에 항복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79~80쪽).닫기이 항복하여 복속해 왔다.

註 001
우두주(牛頭州): 우수주(牛首州), 수약주(首若州)라고도 하며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지역이다. 본서 권2 신라본기2 나해이사금 27년(222) 10월조에 백제가 신라의 우두주를 공격해왔다는 기사를 볼 때, 일찍부터 신라의 영토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본서 권35 잡지4 지리2 삭주조에 의하면 선덕왕 6년(637)에 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고 하므로, 우두주라는 이름은 637년 무렵부터 쓰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 이때에 신라의 영역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여겨지므로, 이 기사의 사실성에는 의문이 있다.
註 002
망제(望祭):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상의 무덤이 있는 쪽을 향하여 지내는 제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재해가 있을 때 왕후(王侯)가 영내의 명산과 대천 혹은 바다를 멀리에서 바라보며 재앙을 물리쳐 주기를 기원하며 지내던 제사를 뜻하기도 한다.
註 003
낙랑(樂浪)과 대방(帶方) 양국: 낙랑과 대방은 고구려 미천왕의 공격으로 각각 313년과 314년에 없어진 중국 군현이므로, 이 기사에서 신라에 항복하여 복속되었다는 것은 사실이라 보기 힘들다. 따라서 3세기 후반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낙랑군과 대방군에 소속된 일부 지역이 이탈하여 신라에 항복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정구복 외, 2012,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3 주석편(상)』,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79~80쪽).
주제분류
사회>의례>제사>천지신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