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대서지의 아들 실성을 고구려에 보내 볼모로 삼다 ( 392년 01월(음) )

37년(392) 봄 정월에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냈다. 왕은 고구려가 강성했으므로 이찬(伊湌)033033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2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이척찬(伊尺湌)이라고도 했다.닫기대서지(大西知)의 아들 실성(實聖)을 보내 볼모로 삼았다.034034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故國壤王) 8년(391)조에 같은 내용이 전해져 신라본기와는 1년의 차이가 난다. 당시 고구려는 대대적인 백제 정벌을 앞두고 있어서 신라를 자국의 영향권에 강하게 종속시킬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그 징표로서 볼모를 요구한 것이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김씨 나물왕이 석씨계와 연결된 실성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볼모 파견을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김철준, 「신라 상대사회의 Dual Organization」, 《한국고대사회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127쪽).닫기

註 033
신라 경위(京位) 17관등 중 2위이다. 《삼국사기》 권38, 잡지7, 직관(職官) 상에 따르면, 이척찬(伊尺湌)이라고도 했다.
註 034
《삼국사기》 권18, 고구려본기6, 고국양왕(故國壤王) 8년(391)조에 같은 내용이 전해져 신라본기와는 1년의 차이가 난다. 당시 고구려는 대대적인 백제 정벌을 앞두고 있어서 신라를 자국의 영향권에 강하게 종속시킬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그 징표로서 볼모를 요구한 것이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김씨 나물왕이 석씨계와 연결된 실성을 견제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볼모 파견을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김철준, 「신라 상대사회의 Dual Organization」, 《한국고대사회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127쪽).
주제분류
정치>외교>수교>나라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
정치>외교>숙위>파견·귀국
색인어
이름 : 대서지,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