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지마립간이 왕위에 오르다 ( 417년 05월(음) )

눌지마립간(訥祇麻立干)083083 신라 제19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17~458년이다.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내지왕(內只王)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일냉수리신라비(503년 건립)에 나오는 ‘내지왕(乃智王)’도 눌지왕을 지칭하는 것임이 유력하다. 눌지왕대부터 김씨 직계 장자(長子)가 왕위를 이어갔고, 고구려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신라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닫기이 왕위에 올랐다. 김대문(金大問)084084 《삼국사기》 권46, 열전6에 그의 전기가 간단히 전한다. 그에 따르면, 김대문은 신라의 귀족가문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都督)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화랑세기(花郞世記)》·《악본(樂本)》·《한산기(漢山記)》가 《삼국사기》 편찬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김대문과 그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이기백, 「김대문과 그의 사학」,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78에 자세하다.닫기이 말하였다. “마립(麻立)이란 방언에서 말뚝을 이른다. 말뚝은 함조(諴操)085085 《삼국유사》 권1 紀異篇 남해왕조에서는 ‘橛標’라 하였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권5)에서는 ‘標’라 하였다. 그런데 諴操의 한문적 의미는 橛標 혹은 標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혹시 신라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아닐까 한다.닫기를 말하는데 지위에 따라 설치했다. 곧 왕의 말뚝은 주(主)가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에 배열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왕의] 명칭으로 삼았다.”
나물왕(奈勿王)086086 신라 제17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356~402년이다. 미추왕에 이어 김씨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는데, 나물왕 이후 왕위가 김씨로 세습된다.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가지고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나물왕대는 신라사에서 비약적인 발전기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호칭은 《삼국유사》 권1, 기이2, 나물왕(奈勿王) 김제상(金堤上)에도 ‘나밀(那密)’이 별칭으로 전해지며, 비로암진공대사비에는 ‘나물(𨚗勿)’, 《태평어람(太平御覽)》 권781, 사이부(四夷部) 동이신라전(東夷新羅傳)에는 ‘루한(樓寒)’으로 되어 있다. 이로써 볼 때 ‘奈’의 음가가 ‘나’와 ‘내’의 두 가지이지만 신라인들은 ‘나물’왕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왕호로서의 이사금(尼師今)도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나물대부터 ‘마립간(麻立干)’을 칭한 것으로 되어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닫기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보반부인(保反夫人) 또는 내례길포(內禮吉怖)라고도 하였다.으로 미추왕(味鄒王)의 딸이다. 왕비는 실성왕(實聖王)의 딸이다.087087 《삼국유사》 권1, 왕력에 따르면, 눌지왕의 왕비이자 자비왕의 어머니는 실성왕의 딸인 아로부인(阿老夫人) 또는 차로부인(次老夫人)이다.닫기나물왕 37년에 실성을 고구려에 볼모로 삼았으므로, 실성이 돌아와 왕이 되자 나물이 자기를 외국에 볼모로 보낸 것을 원망해 그 아들을 해쳐 원한을 갚으려 했다. 사람을 보내 고구려에 있을 때 알고 지내던 사람을 불러 몰래 말하기를
눌지를 보면 곧 죽이시오.”라고 했다. 마침내 눌지로 하여금 가게 하여 도중에 [고구려 사람을] 맞도록 했다. [그런데] 고구려 사람이 눌지를 보니 외모와 정신이 시원스럽고 우아해 군자의 풍채가 있으므로 마침내
“그대 나라의 왕이 나를 시켜 당신을 해치도록 했으나 지금 그대를 보니 차마 해치지 못하겠다.”고 하고 이내 돌아갔다. 눌지가 이를 원망해 도리어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088088 《삼국유사》 권1, 기이2, 제십팔실성왕에서는 “[실성]왕이 전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있음을 꺼려 장차 죽이고자 고구려의 군사를 청해서 거짓으로 눌지를 맞이하였다. 고구려 사람은 눌지가 어진 행실이 있음을 보고 이에 창을 돌려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고 했다. 곧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눌지왕의 즉위 과정에 고구려의 군사력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이 강조되어 있다. 결국 무슨 연유에서인지 고구려의 지지가 실성왕에서 눌지왕으로 급선회한 셈이 된다.닫기

註 083
신라 제19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417~458년이다.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내지왕(內只王)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영일냉수리신라비(503년 건립)에 나오는 ‘내지왕(乃智王)’도 눌지왕을 지칭하는 것임이 유력하다. 눌지왕대부터 김씨 직계 장자(長子)가 왕위를 이어갔고, 고구려의 간섭을 배제함으로써 신라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註 084
《삼국사기》 권46, 열전6에 그의 전기가 간단히 전한다. 그에 따르면, 김대문은 신라의 귀족가문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都督)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고 한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화랑세기(花郞世記)》·《악본(樂本)》·《한산기(漢山記)》가 《삼국사기》 편찬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김대문과 그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이기백, 「김대문과 그의 사학」, 《한국사학의 방향》, 일조각, 1978에 자세하다.
註 085
《삼국유사》 권1 紀異篇 남해왕조에서는 ‘橛標’라 하였고 《삼국사절요(三國史節要)》 (권5)에서는 ‘標’라 하였다. 그런데 諴操의 한문적 의미는 橛標 혹은 標와는 관계가 없으므로, 혹시 신라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 아닐까 한다.
註 086
신라 제17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356~402년이다. 미추왕에 이어 김씨로는 두 번째로 왕위에 올랐는데, 나물왕 이후 왕위가 김씨로 세습된다. 신라(新羅)라는 국호를 가지고 중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나물왕대는 신라사에서 비약적인 발전기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호칭은 《삼국유사》 권1, 기이2, 나물왕(奈勿王) 김제상(金堤上)에도 ‘나밀(那密)’이 별칭으로 전해지며, 비로암진공대사비에는 ‘나물(𨚗勿)’, 《태평어람(太平御覽)》 권781, 사이부(四夷部) 동이신라전(東夷新羅傳)에는 ‘루한(樓寒)’으로 되어 있다. 이로써 볼 때 ‘奈’의 음가가 ‘나’와 ‘내’의 두 가지이지만 신라인들은 ‘나물’왕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왕호로서의 이사금(尼師今)도 《삼국유사》 권1, 왕력에는 나물대부터 ‘마립간(麻立干)’을 칭한 것으로 되어 있어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
註 087
《삼국유사》 권1, 왕력에 따르면, 눌지왕의 왕비이자 자비왕의 어머니는 실성왕의 딸인 아로부인(阿老夫人) 또는 차로부인(次老夫人)이다.
註 088
《삼국유사》 권1, 기이2, 제십팔실성왕에서는 “[실성]왕이 전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있음을 꺼려 장차 죽이고자 고구려의 군사를 청해서 거짓으로 눌지를 맞이하였다. 고구려 사람은 눌지가 어진 행실이 있음을 보고 이에 창을 돌려 [실성]왕을 죽이고 눌지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갔다”고 했다. 곧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눌지왕의 즉위 과정에 고구려의 군사력이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이 강조되어 있다. 결국 무슨 연유에서인지 고구려의 지지가 실성왕에서 눌지왕으로 급선회한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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