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등이 당나라 군영에 사람을 보내다 ( 662년 02월01일(음) )

〔2년(662)〕 2월 1일에 유신 등이 장새(獐塞)001001 장새(獐塞): 신라 한주(漢州) 오관군(五關郡)의 영현(領縣) 장새현(獐塞縣)으로서, 고려시대의 수안군(遂安郡)에 해당한다. 현재의 북한 황해북도 수안군 석담리 일대이다.닫기에 이르렀으니, 평양으로부터 36,000보 떨어진 곳이었다.002002 평양으로부터 36,000보 떨어진 곳이었다: 보(步)는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1보는 당척(唐尺)으로 6척이다. 1당척은 29.7㎝로 1보는 약 1.78m이므로 36,000보는 약 64.1㎞이 된다.닫기 먼저 보기감(歩騎監)003003 보기감(步騎監): 6정(停)이나 9서당(誓幢) 등에 편제된 무관직으로서, 총 수는 63명이었다(본서 권제40 잡지제9 직관하(下) 무관조. 관등 규정은 군사감(軍師監)과 동일하다고 하므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에 해당한다.닫기 열기(裂起)004004 열기(裂起):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태종춘추공조)에서는 연기(然起)라고 하였다. 종족과 성씨 등의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문무왕 2년(662) 평양성을 포위한 소정방군에 군자(軍資)를 운송해 줄 때, 보기감으로서 보행(輔行)하였는데, 3만 보(步) 가량 떨어진 당나라 군영에 편지를 전하는 일에 자원하였다. 거의 이틀을 달려 편지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아 다시 이틀 만에 돌아왔다. 김유신이 기뻐하여 급찬의 관등을 주고 돌아와 왕에게 사찬으로 올려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뒤에 김유신의 아들 김삼광이 집정할 때, 군태수(郡太守)의 관직을 청탁하여, 결국 삼년산군(三年山郡) 태수가 되었다. 열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47 열전제7 열전조 참조.닫기 등 15명을 보내 당나라 군영(軍營)으로 가게 하였다. 이날 눈보라가 치고 몹시 추워서 사람과 말이 많이 얼어 죽었다.

註 001
장새(獐塞): 신라 한주(漢州) 오관군(五關郡)의 영현(領縣) 장새현(獐塞縣)으로서, 고려시대의 수안군(遂安郡)에 해당한다. 현재의 북한 황해북도 수안군 석담리 일대이다.
註 002
평양으로부터 36,000보 떨어진 곳이었다: 보(步)는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1보는 당척(唐尺)으로 6척이다. 1당척은 29.7㎝로 1보는 약 1.78m이므로 36,000보는 약 64.1㎞이 된다.
註 003
보기감(步騎監): 6정(停)이나 9서당(誓幢) 등에 편제된 무관직으로서, 총 수는 63명이었다(본서 권제40 잡지제9 직관하(下) 무관조. 관등 규정은 군사감(軍師監)과 동일하다고 하므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에 해당한다.
註 004
열기(裂起): (『삼국유사』 권제1 기이제2 태종춘추공조)에서는 연기(然起)라고 하였다. 종족과 성씨 등의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문무왕 2년(662) 평양성을 포위한 소정방군에 군자(軍資)를 운송해 줄 때, 보기감으로서 보행(輔行)하였는데, 3만 보(步) 가량 떨어진 당나라 군영에 편지를 전하는 일에 자원하였다. 거의 이틀을 달려 편지를 전달하고, 답서를 받아 다시 이틀 만에 돌아왔다. 김유신이 기뻐하여 급찬의 관등을 주고 돌아와 왕에게 사찬으로 올려줄 것을 청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뒤에 김유신의 아들 김삼광이 집정할 때, 군태수(郡太守)의 관직을 청탁하여, 결국 삼년산군(三年山郡) 태수가 되었다. 열기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47 열전제7 열전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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