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246) 가을 8월에 위(魏)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10,000명을 거느리고 현도(玄菟)로부터 침략해왔다. 왕이 보병과 기병 20,000명을 거느리고 비류수에서 싸워 패배시키니 베어버린 머리가 3천여 급(級)이었다. 또 병력을 이끌고 다시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 또 패배시켰는데 목을 베거나 사로잡은 것이 3천여 명이었다. 왕이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위(魏)의 대병력이 도리어 우리의 적은 병력보다 못하고, 관구검이란 자는 위(魏)의 명장이지만 오늘은 목숨이 내 손안에 있구나.”라고 하고, 철기(鐵騎) 5,000명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다. 관구검이 방진(方陣)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므로 우리 군사가 크게 궤멸하여 죽은 자가 1만 8천여 명이었다. 왕이 기병 1천여 기(騎)를 거느리고 압록원(鴨淥原)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