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왕이 죽다 ( 248년 09월(음) )

가을 9월에 왕이 서거하였다. 시원(柴原)에 장사지냈다. 이름을 동천왕이라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음이 없었다. 가까운 신하들이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왕이 예(禮)가 아니라 하여 이를 금하였다. 장례일에 이르러 무덤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052052 본문의 경우와 같이 죽은 자의 뒤를 이어서 따라서 죽는 것을 순사라고 한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殉葬이라고 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것이나, 그 맥락은 같은 데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고대의 순장의 예로는 夫餘에서 “其死 夏月皆用氷 殺人殉葬 多者百數”(《삼국지》 권30 위서 부여전)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본문에서 순사하는 것을 예가 아니라고 하여 금하였다는 것은 이 시기 고구려 사회와 《삼국지》 부여전에서 묘사된 부여 사회의 차이성을 보이는 것이다. 순장은 고대 지배층이 죽은 뒤에도 소유물을 계속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충족, 죽은 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희생의 의미, 또는 사자를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는 등의 여러 견해가 있다. 어떻든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면서 순장제는 폐지되었다. 본문에서 순사한 자들이 노예적 존재가 아닌 ‘가까운 신하’였다고 하는 것도 부여 사회와의 차이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라에서는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3년조에 “春三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이라 하여, 순장 제도를 이때에 와서 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주용립, 「한국고대의 순장연구」, 《손보기정년기념한국사학론총》, 1988권오영, 「고대 영남지방의 순장」, 《한국고대사논총》 4, 1992).닫기. 나라 사람들이 잡목(柴)을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드디어 그 땅의 이름을 시원이라 하였다.

註 052
본문의 경우와 같이 죽은 자의 뒤를 이어서 따라서 죽는 것을 순사라고 한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殉葬이라고 하는 것과는 구분되는 것이나, 그 맥락은 같은 데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고대의 순장의 예로는 夫餘에서 “其死 夏月皆用氷 殺人殉葬 多者百數”(《삼국지》 권30 위서 부여전)였다는 것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본문에서 순사하는 것을 예가 아니라고 하여 금하였다는 것은 이 시기 고구려 사회와 《삼국지》 부여전에서 묘사된 부여 사회의 차이성을 보이는 것이다. 순장은 고대 지배층이 죽은 뒤에도 소유물을 계속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충족, 죽은 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희생의 의미, 또는 사자를 수호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는 등의 여러 견해가 있다. 어떻든 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면서 순장제는 폐지되었다. 본문에서 순사한 자들이 노예적 존재가 아닌 ‘가까운 신하’였다고 하는 것도 부여 사회와의 차이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신라에서는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 지증마립간 3년조에 “春三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이라 하여, 순장 제도를 이때에 와서 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주용립, 「한국고대의 순장연구」, 《손보기정년기념한국사학론총》, 1988권오영, 「고대 영남지방의 순장」, 《한국고대사논총》 4, 1992).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신상
정치>법률>행정>시호
사회>의례>관혼상제>상제
색인어
이름 : 동천왕
지명 : 시원,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