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상왕이 죽다 ( 300년 08월(음) )

8월에 왕이 나라 안의 남녀 15세 이상을 징발하여084084 고구려에서 力役 동원의 연령 기준이 15세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것은 삼국이 공통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남녀 모두 징발의 대상이었다고 한 데 반해 《삼국사기》 권49 열전 창조리전에서는 같은 내용을 적으면서 ‘丁男’을 동원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남녀 모두를 분별없이 징발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므로 본문의 기록이 의심스럽게 여겨진다(金錫亨 著, 朴鐘鳴 譯, 「三國時代の良人農民」, 《古代朝鮮の基本問題》, 學生社, 1974, 93쪽 | 김기흥,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 역사비평사, 1991, 84~86쪽).닫기 궁실을 수리하였다. 백성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고 일이 괴로워서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창조리가 시정해주기를 건의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재난이 거듭 닥쳐 올해 곡식이 자라지 않아서 백성들이 살 곳을 잃어버렸습니다. 장정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노인과 어린아이는 구렁텅이에 굴러다닙니다. 이는 진실로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며, 삼가 두려워하고 수양하며 반성해야 할 때입니다. 대왕께서 일찍이 이를 생각하지 않고 굶주린 사람들을 몰아 나무와 돌로 하는 공사에 고달프게 하는 것은 백성의 부모가 된 의미에 매우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웃에 강하고 굳센 적이 있어 만일 우리가 피폐한 틈을 타서 쳐들어온다면 사직과 백성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이를 잘 헤아리소서.”라 하였다. 왕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임금이란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바이다. 궁실이 장엄하고 화려하지 않으면 위엄을 보일 수 없다. 지금 국상은 아마 과인을 비방하여 백성의 칭찬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였다. 창조리가 말하기를 “임금이 백성을 걱정하지 않으면 인자하지 못한 것이고, 신하가 임금에게 시정을 건의하지 않으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입니다. 신(臣)은 이미 빈 국상의 자리를 승계하였으니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감히 칭찬을 얻고자 하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국상은 백성을 위하여 죽을 것인가? 다시 말하지 말기 바란다.”고 하였다. 창조리가 왕이 고치지 않을 것으로 알고, 또 해(害)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물러 나와서 여러 신하들과 함께 모의하여 왕을 폐하고, 을불을 맞이하여 왕으로 삼았다. 왕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니 두 아들도 따라서 죽었다. 봉산의 들에 장사지내고 이름을 봉상왕이라 하였다.

註 084
고구려에서 力役 동원의 연령 기준이 15세였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것은 삼국이 공통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남녀 모두 징발의 대상이었다고 한 데 반해 《삼국사기》 권49 열전 창조리전에서는 같은 내용을 적으면서 ‘丁男’을 동원하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해 남녀 모두를 분별없이 징발했다고 여겨지지는 않으므로 본문의 기록이 의심스럽게 여겨진다(金錫亨 著, 朴鐘鳴 譯, 「三國時代の良人農民」, 《古代朝鮮の基本問題》, 學生社, 1974, 93쪽 | 김기흥,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 역사비평사, 1991, 84~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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