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원왕이 죽다 ( 371년 10월23일(음) )

41년(371) 겨울 10월에 백제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대를 내어 막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이 달 23일에 서거하였다. 고국(故國)의 들에 장사지내다. 백제 개로왕(蓋鹵王)036036 백제의 제21대 왕으로 고구려 남침의 위협을 느끼자 北魏에 國書를 보내 고구려를 배후에서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국서의 내용은 《위서(魏書)》 권100 백제전에 실렸는데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개로왕 18년조에 다시 전재되었다. 이것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을 불러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개로왕은 결국 이때 고구려에 잡혀 죽고 말았다.닫기이 위(魏)에 표(表)를 보내어 말하기를 “쇠(釗)의 머리를 베어 매달았다.”고 하였는데 지나친 말이다.037037 백제의 개로왕은 북위에 보낸 국서에서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잡아 목베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고국원왕은 빗나간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럼에도 백제측이 이와 같이 주장한 것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고 그 때의 승리를 과장하려고 한 것으로 여겨진다.닫기

註 036
백제의 제21대 왕으로 고구려 남침의 위협을 느끼자 北魏에 國書를 보내 고구려를 배후에서 공격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 국서의 내용은 《위서(魏書)》 권100 백제전에 실렸는데 《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 개로왕 18년조에 다시 전재되었다. 이것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침을 불러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개로왕은 결국 이때 고구려에 잡혀 죽고 말았다.
註 037
백제의 개로왕은 북위에 보낸 국서에서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잡아 목베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고국원왕은 빗나간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럼에도 백제측이 이와 같이 주장한 것은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고 그 때의 승리를 과장하려고 한 것으로 여겨진다.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신상
사회>의례>관혼상제>상제
색인어
지명 : 평양성, 고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