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에서 불교가 전래되다 ( 372년 06월(음) )

2년(372) 여름 6월에 (秦)040040 전진(351~394)을 말한다. 氐族인 苻氏가 세운 나라이다.닫기왕 부견(符堅)041041 전진의 皇帝로 재위 기간은 357~385년이다. 북조를 거의 통일하여 남조의 동진과 균형을 이루었다. 그는 고구려와는 우호적 외교를 맺었으며 이에 따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닫기이 사신과 승려 순도(順道)042042 372년에 전진으로부터 고구려에 와서 불법을 처음 전해주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동고승전》 권1 석순도조에 그가 동진에서 왔다는 ‘或說’을 소개하고 있지만 신빙성이 높지 않다. 중국으로부터 고구려로 불교를 처음으로 전한 사실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기록 외에 《高僧傳》 권10 曇始전에 曇始가 396년 경에 처음으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釋曇始 關中人 自出家以後多有異迹 晉孝武太元之末 齎經律數十部 往遼東宣化 顯授三乘 立以歸戒 蓋高句驪聞道之始也” 이 내용은 《삼국유사》 권3 흥법 아도기라조에도 인용되었다.닫기를 보내 불상과 경문(經文)을 주었다. 왕이 사신을 보내 사례하고 토산물을 바쳤다.043043 이 해에 전진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것은 단순히 불교의 수용이 종교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 의미, 곧 왕실과 왕실의 교류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때 고구려의 불교 수용은 왕실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이후 고구려 불교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전진의 苻堅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불교의 ‘王卽佛’의 이념을 발전시키고 그를 통하여 왕권의 전제화에 도움을 얻고자 한 의미도 있는 것이다(신동하, 「고구려의 사원조성과 그 의미」, 《한국사론》 19, 1988).닫기


註 040
전진(351~394)을 말한다. 氐族인 苻氏가 세운 나라이다.
註 041
전진의 皇帝로 재위 기간은 357~385년이다. 북조를 거의 통일하여 남조의 동진과 균형을 이루었다. 그는 고구려와는 우호적 외교를 맺었으며 이에 따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고구려에 불교가 들어온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註 042
372년에 전진으로부터 고구려에 와서 불법을 처음 전해주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해동고승전》 권1 석순도조에 그가 동진에서 왔다는 ‘或說’을 소개하고 있지만 신빙성이 높지 않다. 중국으로부터 고구려로 불교를 처음으로 전한 사실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의 기록 외에 《高僧傳》 권10 曇始전에 曇始가 396년 경에 처음으로 고구려에 불교를 전했다는 기록도 있다. “釋曇始 關中人 自出家以後多有異迹 晉孝武太元之末 齎經律數十部 往遼東宣化 顯授三乘 立以歸戒 蓋高句驪聞道之始也” 이 내용은 《삼국유사》 권3 흥법 아도기라조에도 인용되었다.
註 043
이 해에 전진으로부터 불교가 들어온 것은 단순히 불교의 수용이 종교적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적 의미, 곧 왕실과 왕실의 교류라는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따라서 이때 고구려의 불교 수용은 왕실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이후 고구려 불교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또한 전진의 苻堅은 불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면서 불교의 ‘王卽佛’의 이념을 발전시키고 그를 통하여 왕권의 전제화에 도움을 얻고자 한 의미도 있는 것이다(신동하, 「고구려의 사원조성과 그 의미」, 《한국사론》 19, 1988).
주제분류
문화>사상>불교사상>승려생활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
정치>외교>사신>조공
문화>사상>불교사상>불보살상·불사리
문화>사상>불교사상>경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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