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연왕 풍홍을 죽이다 ( 438년 03월(음) )

26년(438) 봄 3월에 처음에 풍홍요동에 도착하자 왕이 사신을 보내 그를 위로하여 말하기를 “용성왕(龍城王) 풍군(馮君)이 여기에 와서 들판에 묵으니 군사와 말이 고달프겠다.”고 하였다. 풍홍이 부끄럽고 화가 나서 황제의 명(制)을 칭하며 이를 꾸짖었다. 왕이 그를 평곽(平郭)145145 현재의 중국 요녕성 盖縣 熊岳의 동남쪽 일대이다.닫기에 두었다가 곧 북풍(北豊)146146 현재의 중국 요녕성 심양시이다.닫기으로 옮겼다. 풍홍이 평소 우리를 업신여겨서 정형(政刑)과 상벌을 마치 그 나라에서와 같이 하였다. 왕이 이에 그를 모시는 사람을 빼앗고 그 태자 왕인(王仁)을 데려다 인질로 삼았다. 풍홍이 이를 원망하여 (宋)에 사신을 보내, 표(表)를 올려 맞이해주기를 청하였다. 태조가 사신 왕백구(王白駒) 등을 보내 그를 맞이하게 하고, 아울러 우리에게 비용을 보내라고 명하였다. 왕이 풍홍을 남쪽으로 보내고 싶지 않아 장수 손수(孫漱)와 고구(高仇) 등을 보내 풍홍북풍에서 죽이고, 아울러 그 자손 10여 인도 죽였다. 백구 등은 거느리고 있는 7천여 인을 통솔하여 손수고구를 갑자기 공격하여, 고구를 죽이고 손수를 사로잡았다. 왕이 왕백구 등이 제멋대로 사람을 죽였으므로 사신을 보내 그를 잡아 보냈다. 태조147147 중국 남조 宋나라의 황제로서 帝號는 文皇帝이다. 재위 기간은 424~453년이다. 陵名 長寧陵. 원래 死後 시호는 景皇帝, 廟號는 中宗이라 올려졌으나, 그 아들인 世祖 孝武帝가 즉위한 후 시호와 廟號가 개칭되었다(《宋書》 권5, 6).닫기는 멀리 있는 나라이므로 그 뜻을 어기지 않으려고 왕백구 등을 감옥에 가두었다가 얼마 후에 놓아주었다.

註 145
현재의 중국 요녕성 盖縣 熊岳의 동남쪽 일대이다.
註 146
현재의 중국 요녕성 심양시이다.
註 147
중국 남조 宋나라의 황제로서 帝號는 文皇帝이다. 재위 기간은 424~453년이다. 陵名 長寧陵. 원래 死後 시호는 景皇帝, 廟號는 中宗이라 올려졌으나, 그 아들인 世祖 孝武帝가 즉위한 후 시호와 廟號가 개칭되었다(《宋書》 권5, 6).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활동(결혼·통치)
정치>외교>인적교류>망명
정치>군사>전쟁>전후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