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군대가 압록강 서쪽에 집결하다 ( 612년 06월(음) )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우문술(宇文述)068068 代郡 武川 사람이다. 본성은 破野頭인데 선비의 俟豆歸에 役屬되었다가 후에 주인을 따라서 宇文氏가 되었다. 고구려를 침공하였을 때 乙支文德에게 大敗한 죄로 관직이 삭탈되었다가 후에 복직되었다(《수서(隋書)》 권61 宇文述傳).닫기부여도(扶餘道)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于仲文)069069 吐谷渾을 토벌하는 등 전공을 세웠으나 고구려 정벌 시 대패하여 그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수서(隋書)》 권60 宇文述傳).닫기낙랑도로 나오고, 좌효위(左驍衛)070070 정3품의 무관직이다.닫기대장군 형원항(荊元恒)은 요동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설세웅(薛世雄)071071 隋 煬帝 때의 장군이다. 고구려 침공 시 沃沮道軍將으로 참여하였으나 宇文述과 함께 平壤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하였다(《수서(隋書)》 권65 薛世雄傳).닫기옥저도로 나오고, 우둔위(右屯衛)장군072072 종3품의 무관직이다.닫기신세웅(辛世雄)은 현도도로 나오고, 우어위(右禦衛)장군073073 종3품의 무관직이다.닫기장근(張瑾)은 양평도(襄平道)로 나오고, 우무후(右武侯)장군074074 종3품의 무관직이다.닫기조효재(趙孝才)는 갈석도(碣石道)로 나오고, 탁군(涿郡)태수 검교좌무위(檢校左武衛)장군 최홍승(崔弘昇)은 수성도(遂城道)075075 遂城 방면 또는 그 길이라는 뜻이다. 遂城은 현재의 황해북도 遂安郡 石潭里(舊 遂安邑)이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148쪽). 樂浪 11속현 중의 하나였다. 《漢書》 권28 下에서는 ‘遂成’으로 쓰고, 《後漢書》 郡國志 제23에서는 ‘遂城’으로 썼다. 본문에서 隋軍이 遂城道로 나왔다는 것은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낙랑 지역을 회복한다는 명분에서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로 나오고, 검교우어위호분랑장(檢校右禦衛虎賁郞將)076076 隋나라 때 12衛에 각각 4명씩 두어졌다. 장군을 보좌하는 정4품 관직이다.닫기위문승(衛文昇)은 증지도(增地道)077077 增地 방면 또는 그 길이라는 뜻이다. 增地는 현재의 평안남도 安州로서 樂浪의 11屬縣 중의 하나였다. 여기의 增地道는 실제적인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낙랑 지역을 회복한다는 명분에서 붙여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로 나와서 모두 압록수 서쪽에 모였다. 우문술 등의 군사는 노하(瀘河)078078 현재의 중국 小凌河의 하류인 요서 錦州이다.닫기·회원(懷遠)079079 현재의 중국 요녕성 北鎭縣의 남쪽 石山鎭이다.닫기 두 진에서부터 사람과 말에게 모두 100일치 식량을 지급하고, 또 방패, 갑옷, 창과 옷감, 무기, 화막(火幕)080080 장막, 천막으로 보는 견해(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86)가 있으나, 幕은 어깨나 넙적다리를 가리는 도구로 火幕은 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개인용 장비인 것으로 생각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닫기을 지급하니, 사람마다 3섬 이상이 되어 무거워서 가지고 갈 수가 없었다. 군중에 명령을 내려 “쌀과 조를 버리고 가는 자는 목을 베겠다.”고 하니 사졸들이 모두 군막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겨우 행군이 중간에 이르렀는데 식량이 다 떨어지려 하였다.

註 068
代郡 武川 사람이다. 본성은 破野頭인데 선비의 俟豆歸에 役屬되었다가 후에 주인을 따라서 宇文氏가 되었다. 고구려를 침공하였을 때 乙支文德에게 大敗한 죄로 관직이 삭탈되었다가 후에 복직되었다(《수서(隋書)》 권61 宇文述傳).
註 069
吐谷渾을 토벌하는 등 전공을 세웠으나 고구려 정벌 시 대패하여 그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결국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수서(隋書)》 권60 宇文述傳).
註 070
정3품의 무관직이다.
註 071
隋 煬帝 때의 장군이다. 고구려 침공 시 沃沮道軍將으로 참여하였으나 宇文述과 함께 平壤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하였다(《수서(隋書)》 권65 薛世雄傳).
註 072
종3품의 무관직이다.
註 073
종3품의 무관직이다.
註 074
종3품의 무관직이다.
註 075
遂城 방면 또는 그 길이라는 뜻이다. 遂城은 현재의 황해북도 遂安郡 石潭里(舊 遂安邑)이다(이병도,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148쪽). 樂浪 11속현 중의 하나였다. 《漢書》 권28 下에서는 ‘遂成’으로 쓰고, 《後漢書》 郡國志 제23에서는 ‘遂城’으로 썼다. 본문에서 隋軍이 遂城道로 나왔다는 것은 실제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낙랑 지역을 회복한다는 명분에서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076
隋나라 때 12衛에 각각 4명씩 두어졌다. 장군을 보좌하는 정4품 관직이다.
註 077
增地 방면 또는 그 길이라는 뜻이다. 增地는 현재의 평안남도 安州로서 樂浪의 11屬縣 중의 하나였다. 여기의 增地道는 실제적인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낙랑 지역을 회복한다는 명분에서 붙여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078
현재의 중국 小凌河의 하류인 요서 錦州이다.
註 079
현재의 중국 요녕성 北鎭縣의 남쪽 石山鎭이다.
註 080
장막, 천막으로 보는 견해(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86)가 있으나, 幕은 어깨나 넙적다리를 가리는 도구로 火幕은 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개인용 장비인 것으로 생각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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