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이 수의 진영에 거짓 항복하다 ( 612년 06월(음) )

왕이 대신 을지문덕(乙支文德)081081 을지문덕은 고구려 영양왕 때의 장수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81 考異篇에서는 《革命記》를 인용하면서 그를 ‘尉支文德’이라고 한 것을 소개하였다. ‘乙支’는 고구려에서 ‘于台’의 용례와 같이 ‘웃사람’ ‘큰 자’ 등의 뜻으로, 이러한 의미의 관직이 성씨로 채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그를 尉支文德이라 한 데 주목하여 그가 곧 선비족의 별종인 尉遲氏 출신으로서 고구려로 망명 귀화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김원룡, 「을지문덕의 출자에 대한 의론」, 《전해종박사화갑기념 사학논총》, 일조각, 1979). 隋나라 煬帝가 宇文述, 于仲文 등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할 때, 을지문덕은 일면 거짓으로 항복하는 것처럼 하면서, 일면 수나라 군사를 평양성 가까이까지 유인하였다가, 薩水에서 일거에 그들을 공격하여 수나라 군대를 궤멸시켰다. 이 전투로 수나라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삼국사기》 권44 을지문덕조에 기록되어 있다.닫기을 보내 그 진영에 나아가 거짓 항복하게 하였는데, 실은 그 허실을 보려고 함이었다. 우중문이 앞서 밀지를 받았는데 “만일 왕이나 을지문덕이 오게 되면 반드시 그를 사로잡으라.”고 하였다. 우중문이 그를 잡으려고 하니 상서우승(尙書右丞)082082 尙書省의 관료로 종4품이다. 左丞과 함께 6部를 분담하여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右丞은 右司郞中, 員外郞을 통솔하고, 兵·刑·工 3部를 감독하였다.닫기유사룡(劉士龍)이 위무사(慰撫使)로서 굳이 그만두라고 하므로, 우중문이 마침내 그 말을 듣고 을지문덕을 돌아가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이를 후회하고 사람을 보내 을지문덕에게 말하기를 “다시 할 말이 있으니 다시 오라.”고 하였으나, 을지문덕은 돌아보지도 않고 압록수를 건너서 가버렸다.

註 081
을지문덕은 고구려 영양왕 때의 장수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81 考異篇에서는 《革命記》를 인용하면서 그를 ‘尉支文德’이라고 한 것을 소개하였다. ‘乙支’는 고구려에서 ‘于台’의 용례와 같이 ‘웃사람’ ‘큰 자’ 등의 뜻으로, 이러한 의미의 관직이 성씨로 채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 그를 尉支文德이라 한 데 주목하여 그가 곧 선비족의 별종인 尉遲氏 출신으로서 고구려로 망명 귀화한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김원룡, 「을지문덕의 출자에 대한 의론」, 《전해종박사화갑기념 사학논총》, 일조각, 1979). 隋나라 煬帝가 宇文述, 于仲文 등을 앞세워 고구려를 침공할 때, 을지문덕은 일면 거짓으로 항복하는 것처럼 하면서, 일면 수나라 군사를 평양성 가까이까지 유인하였다가, 薩水에서 일거에 그들을 공격하여 수나라 군대를 궤멸시켰다. 이 전투로 수나라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퇴각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삼국사기》 권44 을지문덕조에 기록되어 있다.
註 082
尙書省의 관료로 종4품이다. 左丞과 함께 6部를 분담하여 감독하는 임무를 맡았다. 右丞은 右司郞中, 員外郞을 통솔하고, 兵·刑·工 3部를 감독하였다.
주제분류
정치>군사>군사조직>군사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