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갈을 크게 격파하다 ( 기원전 11년 02월 )

8년(B.C. 11) 봄 2월에 말갈의 적병 3,000명이 와서 위례성(慰禮城)을 포위하자 왕이 성문을 닫고 나가 싸우지 않았다. 열흘이 지나자 적은 양식이 떨어져 돌아갔다. 〔이에〕 왕이 날랜 군사를 뽑아 대부현(大斧峴)001001 대부현(大斧峴)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온조왕 22년(4)에 말갈과 전투를 벌인 ‘부현‘, 온조왕 40년(22)에 말갈이 습격해온 ‘부현성’, 본서 권35 지리2 신라 한주 부평군 평강현조에 나오는 ‘부양현’과 같은 곳으로 현재의 강원도 평강군 평강면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千寬宇, 118~120쪽; 李丙燾, 354쪽). ‘부양’은 온조왕 43년(25)조에는 남옥저의 구파해(仇頗解) 등이 귀순해온 곳으로 나온다.
〈참고문헌〉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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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쫓아가서 한 번에 싸워 이겼는데, 죽이거나 사로잡은 자가 5백여 명이었다.

註 001
대부현(大斧峴)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온조왕 22년(4)에 말갈과 전투를 벌인 ‘부현‘, 온조왕 40년(22)에 말갈이 습격해온 ‘부현성’, 본서 권35 지리2 신라 한주 부평군 평강현조에 나오는 ‘부양현’과 같은 곳으로 현재의 강원도 평강군 평강면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있다(千寬宇, 118~120쪽; 李丙燾, 354쪽). ‘부양’은 온조왕 43년(25)조에는 남옥저의 구파해(仇頗解) 등이 귀순해온 곳으로 나온다.
〈참고문헌〉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정치>군사>전쟁>전투유형
색인어
지명 : 위례성, 대부현
국명 : 말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