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B.C. 11)〕 가을 7월에 마수성(馬首城)을 쌓고 병산책(甁山柵)을 세웠다. 낙랑태수(樂浪太守)의 사신이 다음과 같이 아뢰어 말하였다.
“지난번에는 서로 예를 갖추어 방문하고, 우호를 맺어 뜻이 한 집안과 같았는데, 지금 우리의 강역을 핍박하여 성을 쌓고 목책을 세우고 있으니, 혹시 야금야금 먹어 들어올 계책이 있어서인가? 만일 옛날의 우호를 저버리지 않고 성을 허물고 목책을 부수어 버린다면 시기하고 의심할 바가 없겠지만, 혹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청컨대 한 번 싸워서 승부를 결정짓도록 하자.”
〔이에〕 왕이 회답하였다. “요새를 설치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떳떳한 도리인데, 어찌 감히 이것 때문에 화친과 우호를 저버리는 일이 있겠는가? 마땅히 집사(執事)가 의심할 바가 아닌 것 같다. 만일 집사가 강함을 믿고 군사를 낸다면, 우리나라[小國]도 이에 대응할 뿐이다.” 이로 말미암아 낙랑과의 우호를 잃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