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책을 설치하여 낙랑으로 통하는 길을 막다 ( 기원전 8년 07월 )

〔11년(B.C. 8)〕 가을 7월에 독산책(禿山柵)001001 독산책(禿山柵)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독산책을 설치해서 낙랑과의 통로를 막았기 때문에 낙랑·고구려와 접경지대인 경기도 북부나 황해도 남부 방면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鄭求福 外, 652쪽). 그런데 본서 권24 백제본기2 근초고왕 28년(373) 7월조에 독산성주가 신라로 투항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본서 권27 백제본기5 무왕 37년(636)조에는 장군 우소(于召)가 신라의 독산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또한 본서 권18 고구려본기6 고구려 광개토왕 18년(409) 7월조와 권19 고구려본기7 양원왕 4년(548) 정월조에도 독산성이 나오고 있어 한강상류지역과 동해안지역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盧泰敦, 50쪽),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盧泰敦, 1996, 「5∼7세기 고구려의 지방제도」, 『韓國古代史論叢』 8
鄭求福 外, 1997, 『譯註 三國史記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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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책(狗川柵)002002 구천책(狗川柵)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본서 권26 백제본기4 성왕 32년(554)조에 성왕이 신라군에게 시해당한 곳으로 나오는 구천(狗川: 현재의 충북 옥천지방)과 같은 곳으로 보아 옥천으로 비정하기도 하고(酒井改藏, 1970; 李丙燾, 1977, 408쪽), 화성일대로 보는 견해(李丙燾, 1976)도 있으나, 백제가 구천책을 세워 낙랑과의 통로를 막은 것에서 미루어 볼 때 독산책과 마찬가지로 낙랑 또는 고구려와 접경지대인 경기도 북부나 황해도 남부 지역이 아닐까 한다. 본서 권24 백제본기2 비류왕 22년(325) 조와 권25 백제본기3 진사왕 8년(392)조에는 왕이 구원(狗原)에서 사냥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진사왕 8년 11월조에는 왕이 구원행궁(狗原行宮)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구원(狗原)은 구천(狗川)이 흐르는 벌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朝鮮學會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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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두 목책을 세워 낙랑으로 통하는 길을 막았다.

註 001
독산책(禿山柵)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독산책을 설치해서 낙랑과의 통로를 막았기 때문에 낙랑·고구려와 접경지대인 경기도 북부나 황해도 남부 방면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鄭求福 外, 652쪽). 그런데 본서 권24 백제본기2 근초고왕 28년(373) 7월조에 독산성주가 신라로 투항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본서 권27 백제본기5 무왕 37년(636)조에는 장군 우소(于召)가 신라의 독산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또한 본서 권18 고구려본기6 고구려 광개토왕 18년(409) 7월조와 권19 고구려본기7 양원왕 4년(548) 정월조에도 독산성이 나오고 있어 한강상류지역과 동해안지역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盧泰敦, 50쪽),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참고문헌〉
盧泰敦, 1996, 「5∼7세기 고구려의 지방제도」, 『韓國古代史論叢』 8
鄭求福 外, 1997, 『譯註 三國史記 3 주석편(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註 002
구천책(狗川柵)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본서 권26 백제본기4 성왕 32년(554)조에 성왕이 신라군에게 시해당한 곳으로 나오는 구천(狗川: 현재의 충북 옥천지방)과 같은 곳으로 보아 옥천으로 비정하기도 하고(酒井改藏, 1970; 李丙燾, 1977, 408쪽), 화성일대로 보는 견해(李丙燾, 1976)도 있으나, 백제가 구천책을 세워 낙랑과의 통로를 막은 것에서 미루어 볼 때 독산책과 마찬가지로 낙랑 또는 고구려와 접경지대인 경기도 북부나 황해도 남부 지역이 아닐까 한다. 본서 권24 백제본기2 비류왕 22년(325) 조와 권25 백제본기3 진사왕 8년(392)조에는 왕이 구원(狗原)에서 사냥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진사왕 8년 11월조에는 왕이 구원행궁(狗原行宮)에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구원(狗原)은 구천(狗川)이 흐르는 벌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朝鮮學會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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