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에 도읍을 옮긴다고 알리고 강역을 정하다 ( 기원전 6년 08월 )

〔13년(B.C. 6)〕 8월에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遷都]을 알리고,001001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遷都]을 알리고 : 『삼국지(三國志)』 권30 동이전 한조에 따르면 마한의 중심 세력은 목지국이었으며, 그 대표자는 진왕(辰王)으로 불렸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24년(6) 가을 7월조에 나오는 것처럼 백제는 진왕의 양해 아래 마한의 북부 지역에 정착하여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주서(周書)』 권49 백제전에 마한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었고[百濟者 其先槪馬韓之屬國], 백제에서도 천도 사실을 알린 것으로 보인다.닫기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정하였다. 북쪽으로는 패하(浿河)002002 패하(浿河) : 패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대동강으로 보는 견해, 예성강으로 보는 견해, 임진강으로 보는 견해(酒井改藏, 1970; 全榮來, 137쪽) 등이 있으나, 현재의 예성강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패강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나, 패수와는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참고문헌〉
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朝鮮學會
全榮來, 1985, 「百濟南方境域의 變遷」, 『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正音文化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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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이르고, 남쪽은 웅천(熊川)003003 웅천(熊川) : 웅천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기도 안성군 안성천으로 보는 견해(李丙燾, 247~248쪽)와 공주의 금강으로 보는 견해(千寬宇, 1976)가 있다. 모두 지명의 유사성을 근거로 위치 비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24년(6) 7월조를 보면 백제의 웅천책 설치에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서 꾸짖고 있어, 웅천이 백제가 마한과의 관계에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던 중요한 곳임을 암시한다. 당시 마한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의 중심지 자체가 천안 아산 일대로 추정되므로 웅천은 안성천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웅천이라는 명칭은 2006년 중국 뤄양[洛陽]에서 발견된 「예식진 묘지명(禰寔進 墓誌銘)」에 묘주의 출신을 ‘熊川人’이라 표기한 것과 본서 권37 지리 4의 백제의 웅천주에 속하는 군현명이 기술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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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경계로 삼으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고, 동쪽으로는 주양(走壤)004004 주양(走壤) : 현재의 강원도 춘천 지역으로 비정된다. 춘천의 옛 명칭은 수약주 또는 주양성이었는데, 이는 본서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13년(673) 9월조의 “9월에 국원성 … 수약주의 주양성(일명 질암성) …을 쌓았다”는 기사에서 확인된다. 본서 권37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는 주양성(走壤城)이 보인다.닫기에 이르렀다.005005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 주양(走壤)에 이르렀다 : 백제의 영역이 북쪽의 패하(浿河, 예성강)로부터 남쪽의 웅천(熊川, 안성천), 서쪽의 큰 바다(大海, 서해), 동쪽의 주양(走壤, 춘천)에 이르렀다고 할 때 이것이 어느 시기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후대의 사실을 온조왕대의 기사로 부회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나, 고이왕대의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李丙燾, 476~477쪽), 2~3세기경의 사실로 보는 견해(崔夢龍·權五榮, 1985), 근초고왕대의 사실로 보는 견해(김기섭, 2000) 등이 있다. 최근에는 북으로 경기도 포천 고모리산성과 파주 월롱산성, 동으로 강원도 화천 원천리유적, 남으로 경기도 안성 도기동산성 유적 등의 고고자료가 3세기 후반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근거로 이 기사의 강역의 범위가 3세기경, 즉 고이왕대에 해당하는 사실임을 밝힌 견해도 제기되었다(노중국, 158~160쪽).
〈참고문헌〉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崔夢龍·權五榮, 1985, 「考古學的 資料를 通해 본 百濟初期의 領域考察」, 『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正音文化社
김기섭, 2000, 『백제와 근초고왕』, 학연문화사
노중국, 2018, 『백제정치사』, 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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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1
마한(馬韓)에 사신을 보내 도읍을 옮긴다는 것[遷都]을 알리고 : 『삼국지(三國志)』 권30 동이전 한조에 따르면 마한의 중심 세력은 목지국이었으며, 그 대표자는 진왕(辰王)으로 불렸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24년(6) 가을 7월조에 나오는 것처럼 백제는 진왕의 양해 아래 마한의 북부 지역에 정착하여 국가를 세웠기 때문에 『주서(周書)』 권49 백제전에 마한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었고[百濟者 其先槪馬韓之屬國], 백제에서도 천도 사실을 알린 것으로 보인다.
註 002
패하(浿河) : 패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여 대동강으로 보는 견해, 예성강으로 보는 견해, 임진강으로 보는 견해(酒井改藏, 1970; 全榮來, 137쪽) 등이 있으나, 현재의 예성강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패강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나, 패수와는 달리 볼 여지도 있다.
〈참고문헌〉
酒井改藏, 1970, 「三國史記の地名考」, 『朝鮮學報』 54, 朝鮮學會
全榮來, 1985, 「百濟南方境域의 變遷」, 『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正音文化社
註 003
웅천(熊川) : 웅천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기도 안성군 안성천으로 보는 견해(李丙燾, 247~248쪽)와 공주의 금강으로 보는 견해(千寬宇, 1976)가 있다. 모두 지명의 유사성을 근거로 위치 비정을 한 것이다. 그런데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 24년(6) 7월조를 보면 백제의 웅천책 설치에 마한왕이 사신을 보내서 꾸짖고 있어, 웅천이 백제가 마한과의 관계에서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던 중요한 곳임을 암시한다. 당시 마한의 맹주국이었던 목지국의 중심지 자체가 천안 아산 일대로 추정되므로 웅천은 안성천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웅천이라는 명칭은 2006년 중국 뤄양[洛陽]에서 발견된 「예식진 묘지명(禰寔進 墓誌銘)」에 묘주의 출신을 ‘熊川人’이라 표기한 것과 본서 권37 지리 4의 백제의 웅천주에 속하는 군현명이 기술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註 004
주양(走壤) : 현재의 강원도 춘천 지역으로 비정된다. 춘천의 옛 명칭은 수약주 또는 주양성이었는데, 이는 본서 권7 신라본기7 문무왕 13년(673) 9월조의 “9월에 국원성 … 수약주의 주양성(일명 질암성) …을 쌓았다”는 기사에서 확인된다. 본서 권37 지리4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는 주양성(走壤城)이 보인다.
註 005
마침내 강역을 구획하여 … 주양(走壤)에 이르렀다 : 백제의 영역이 북쪽의 패하(浿河, 예성강)로부터 남쪽의 웅천(熊川, 안성천), 서쪽의 큰 바다(大海, 서해), 동쪽의 주양(走壤, 춘천)에 이르렀다고 할 때 이것이 어느 시기의 사실을 반영하는 것인가가 논란이 되었다. 후대의 사실을 온조왕대의 기사로 부회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나, 고이왕대의 사실을 반영한 것이라는 견해(李丙燾, 476~477쪽), 2~3세기경의 사실로 보는 견해(崔夢龍·權五榮, 1985), 근초고왕대의 사실로 보는 견해(김기섭, 2000) 등이 있다. 최근에는 북으로 경기도 포천 고모리산성과 파주 월롱산성, 동으로 강원도 화천 원천리유적, 남으로 경기도 안성 도기동산성 유적 등의 고고자료가 3세기 후반까지 올라간다는 것을 근거로 이 기사의 강역의 범위가 3세기경, 즉 고이왕대에 해당하는 사실임을 밝힌 견해도 제기되었다(노중국, 158~160쪽).
〈참고문헌〉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崔夢龍·權五榮, 1985, 「考古學的 資料를 通해 본 百濟初期의 領域考察」, 『千寬宇先生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 正音文化社
김기섭, 2000, 『백제와 근초고왕』, 학연문화사
노중국, 2018, 『백제정치사』, 일조각
주제분류
정치>외교>사신>파견·영접
정치>외교>사신>사절활동
정치>왕실>국왕>활동(결혼·통치)
색인어
지명 : 패하, 웅천, 주양
국명 : 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