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의 우물이 넘치고,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다 ( 7년 02월(음) )

25년(7) 봄 2월에 왕궁의 우물물이 갑자기 넘치고, 한성(漢城)001001 한성(漢城) : 백제의 수도 한성은 북성(北城: 풍납토성)과 남성(南城: 몽촌토성)을 합하여 부른 것이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후 백제의 고도(古都)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확장되었다.닫기의 민가에서 말이 소를 낳았는데, 머리 하나에 몸은 둘이었다. 일자(日者)002002 일자(日者) : 일관(日官), 즉 천문의 변화와 자연의 재이(災異)를 관찰하고 그 의미를 점치는 사람을 말한다. 중국의 경우 일관은 역수간지(曆數干支)를 맡고 천문을 관장하였는데 천관(天官)이라고도 하였다. 백제는 사비천도 후 22부사를 두었는데, 천문과 역법을 담당한 일관부(日官部)가 있었다.닫기가 말하기를, “우물물이 갑자기 넘친 것은 대왕께서 우뚝 일어날 조짐이요, 소가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인 것은 대왕께서 이웃 나라를 병합할 징조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마침내 진한(辰韓)003003 진한(辰韓) : 마한·변한과 합쳐 삼한이라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권30 동이전 진·변한조에 의하면 진인(秦人)이 망명해 와서 세웠기 때문에 진한(秦韓)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삼국지』 권30 동이전 한조에서는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다[辰韓者 古之辰國]’라고 한 것에서 보듯이 진국의 후신이며, 정치적 성격은 12국으로 구성된 (소국)연맹체이다. 진한연맹체를 구성한 여러 나라[小國]는 처음에는 6국이었으나 점차 분화하여 12국으로 확대되었다. 12국 가운데 대국(大國)은 4~5천 가(家)로 구성되었고, 소국은 수백 가로 구성되었다. 12국의 위치는 대체로 소백산맥 이남,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한연맹체의 성립의 하한은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 인용된 『위략(魏略)』에 왕망(王莽) 지황(地皇) 연간(20~22)에 진한 우거수(右渠帥) 염사치(廉斯鑡)가 자신의 읍락을 떠나 낙랑군에 항복하러 갔다는 기록이 나오므로 기원 전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철기와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경남 창원시 다호리 유적이 B.C. 1세기로 편년되고 있으므로 성립의 상한은 B.C. 1~2세기로 올라갈 수 있다. 한편 진한연맹체가 소멸된 시기에 대해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조에는 혁거세 당시에 이미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삼국지』 권30 동이전 진·변한조에는 3세기 중엽경까지 진한연맹체가 존속한 것으로 나오고 있고, 특히 위나라 정시(正始) 6~7년(245~246) 경에 진한 8국의 분할 문제로 한(韓)과 대방군이 전쟁을 하여 한이 패배하고 나해국(那奚國) 등 수십국이 이탈하였다고 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기술되어 있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진한연맹체의 소멸은 3세기 중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金貞培, 1976; 李丙燾, 1976; 千寬宇, 1989; 李賢惠, 1984; 權五榮, 1996).
〈참고문헌〉
金貞培, 1976, 「準王 및 辰國과 「三國正統論」의 諸問題」, 『韓國史硏究』 13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千寬宇,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一潮閣
李賢惠, 1984,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一潮閣
權五榮, 1996, 「三韓의 「國」에 대한 硏究」, 서울大學校 博士學位論文
닫기
마한(馬韓)을 병탄할 마음을 가졌다.

註 001
한성(漢城) : 백제의 수도 한성은 북성(北城: 풍납토성)과 남성(南城: 몽촌토성)을 합하여 부른 것이다.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한 이후 백제의 고도(古都) 전체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확장되었다.
註 002
일자(日者) : 일관(日官), 즉 천문의 변화와 자연의 재이(災異)를 관찰하고 그 의미를 점치는 사람을 말한다. 중국의 경우 일관은 역수간지(曆數干支)를 맡고 천문을 관장하였는데 천관(天官)이라고도 하였다. 백제는 사비천도 후 22부사를 두었는데, 천문과 역법을 담당한 일관부(日官部)가 있었다.
註 003
진한(辰韓) : 마한·변한과 합쳐 삼한이라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권30 동이전 진·변한조에 의하면 진인(秦人)이 망명해 와서 세웠기 때문에 진한(秦韓)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삼국지』 권30 동이전 한조에서는 ‘진한은 옛날의 진국이다[辰韓者 古之辰國]’라고 한 것에서 보듯이 진국의 후신이며, 정치적 성격은 12국으로 구성된 (소국)연맹체이다. 진한연맹체를 구성한 여러 나라[小國]는 처음에는 6국이었으나 점차 분화하여 12국으로 확대되었다. 12국 가운데 대국(大國)은 4~5천 가(家)로 구성되었고, 소국은 수백 가로 구성되었다. 12국의 위치는 대체로 소백산맥 이남, 낙동강 동쪽의 경상도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한연맹체의 성립의 하한은 『삼국지』 동이전 한조에 인용된 『위략(魏略)』에 왕망(王莽) 지황(地皇) 연간(20~22)에 진한 우거수(右渠帥) 염사치(廉斯鑡)가 자신의 읍락을 떠나 낙랑군에 항복하러 갔다는 기록이 나오므로 기원 전후한 시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철기와 청동기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경남 창원시 다호리 유적이 B.C. 1세기로 편년되고 있으므로 성립의 상한은 B.C. 1~2세기로 올라갈 수 있다. 한편 진한연맹체가 소멸된 시기에 대해 본서 권1 신라본기1 혁거세조에는 혁거세 당시에 이미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삼국지』 권30 동이전 진·변한조에는 3세기 중엽경까지 진한연맹체가 존속한 것으로 나오고 있고, 특히 위나라 정시(正始) 6~7년(245~246) 경에 진한 8국의 분할 문제로 한(韓)과 대방군이 전쟁을 하여 한이 패배하고 나해국(那奚國) 등 수십국이 이탈하였다고 하는 구체적인 사건이 기술되어 있는 것에서 미루어 볼 때 진한연맹체의 소멸은 3세기 중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金貞培, 1976; 李丙燾, 1976; 千寬宇, 1989; 李賢惠, 1984; 權五榮, 1996).
〈참고문헌〉
金貞培, 1976, 「準王 및 辰國과 「三國正統論」의 諸問題」, 『韓國史硏究』 13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千寬宇, 1989, 『古朝鮮史·三韓史硏究』, 一潮閣
李賢惠, 1984,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一潮閣
權五榮, 1996, 「三韓의 「國」에 대한 硏究」, 서울大學校 博士學位論文
주제분류
정치>신이>생물>동물
정치>신이>기타>기타
색인어
지명 : 한성
국명 : 진한, 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