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을 기습하여 병합하다 ( 8년 10월(음) )

〔26년(8)〕 겨울 10월에 왕이 군사를 내어 겉으로는 사냥을 간다고 말하면서 몰래 마한을 습격하여 마침내 그 국읍(國邑)001001 국읍(國邑) : 국읍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마한을 한 나라로 볼 경우는 국을 형성한 몇 개의 읍락 가운데 상대적으로 세력이 강하거나 중심 기능을 수행한 대읍락, 즉 건국을 주도한 세력들이 자리 잡은 읍락을 의미하는 국읍(李賢惠, 104쪽; 盧重國, 3~4쪽)을 지칭하며, 이 기사의 국읍은 마한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마한을 여러 나라, 즉 소국의 연맹체로 볼 경우 국과 읍을 지칭한다.
〈참고문헌〉
李賢惠, 1984,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一潮閣
盧重國, 1989, 「韓國古代의 邑落의 構造와 性格 -國家形成過程과 관련하여-」, 『大丘史學』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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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병합하였다.002002 왕이 … 그 국읍(國邑)을 병합하였다 :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대의 기사에서는 백제의 마한 정복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련의 마한 정복과정이 온조왕대에 집약되어 있는데, 백제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이룩한 사실을 시조의 일로 소급하여 일관되게 정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盧重國, 21쪽). 온조왕대에 나오는 일련의 사실을 관련 지명의 분석과 『일본서기(日本書紀)』 권9 神功紀 49년(249; 수정연대 369)조 기사와의 일치성 검토를 통해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의 사실이 온조왕대에 투영된 것으로 보아, 백제가 마한의 잔여 소국까지 완전히 병합한 시기에 대해서는 근초고왕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G.K.Ledyard, 1975; 李丙燾, 1976; 盧重國, 1988, 117~122쪽; 유현용, 25~26쪽). 그러나 영산강유역의 대형옹관고분과 같은 고고자료를 근거로 근초고왕대 마한세력에 대한 완전 병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金英心, 74~75쪽). 최근에는 근초고왕대 마한 통합은 문헌사료로서는 입증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정동준, 2018; 2019).
〈참고문헌〉
G.K.Ledyard, 1975, “Galloping along with the horseriders”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1, No.2
李丙燾, 1976, 「近肖古王拓境考」,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盧重國, 1978, 「百濟王室의 南遷과 支配勢力의 變遷」, 『韓國史論』 4, 서울大學校 國史學科
盧重國, 1988, 『百濟政治史硏究』, 一潮閣
金英心, 1990, 「5~6세기 百濟의 地方統治體制」, 『韓國史論』 22, 서울大學校 國史學科
유현용, 1997, 「溫祚王代 馬韓征服記事의 재고찰」, 『史叢』 46, 고려대학교 역사학연구회
정동준, 2018, 「백제 근초고왕대의 마한 영역화에 대한 사료 재검토」, 『韓國古代史硏究』 91
정동준, 2019, 「문헌사료로 본 백제의 마한 통합과정」, 『百濟學報』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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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원산성(圓山城)003003 원산성(圓山城)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24년(190)조에 보이는 “신라서쪽 경계 원산향[新羅西境圓山鄕]”의 원산향과 동일한 곳으로 보고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 비정하기도 하나, 예천 용궁은 마한 세력권이 아니므로 지리적으로 맞지 않다. 원산향의 위치에 대해서는 ① 『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전라도 진산현 고적조의 ‘원산향’에 주목하여 충남 진산으로 보는 설(千寬宇, 128쪽), ② 완산을 잘못 베껴쓴 것으로 보아 전북 전주시에 비정하는 견해(全榮來, 1975), ③ 충남 금산 마전리설(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91, 157쪽), ④ 음성의 옛 지명인 잉홀현(仍忽縣)의 ‘잉’이 원과 발음이 비슷하고 ‘홀’이 산의 의미이므로 충북 음성으로 보는 설(김태식, 138~139쪽) 등이 있다.
〈참고문헌〉
全榮來, 1975, 「完山과 比斯伐論」, 『馬韓·百濟文化』 1, 圓光大學校 馬韓·百濟文化硏究所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91, 『조선전사 3 중세편』,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김태식, 2006, 「5~6세기 高句麗와 加耶의 관계」, 『北方史論叢』 11, 고구려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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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금현성(錦峴城)004004 금현성(錦峴城)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금현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① 나주설(丁若鏞, 「馬韓考」, 『疆域考』 권1), ② 진안군 부귀면 곰치리설(全榮來, 1975), ③ 충남 연기군 전의면 금성산에 위치한 금이산성설(李丙燾, 57쪽), ④ 고구려의 금물노군인 진천설(閔德植, 47쪽; 김태식, 138쪽), ⑤ 연기군 전동면 금성산성설(梁起錫, 2005) 등이 있다. 온조왕 27년(9) 아산에 대두산성을 축조하고 있는 것과 연계시켜 아산과 가까운 연기 전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全榮來, 1975, 「完山과 比斯伐論」, 『馬韓·百濟文化』 1, 圓光大學校 馬韓·百濟文化硏究所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閔德植, 1983, 「高句麗의 道西縣城考」, 『史學硏究』 36
梁起錫, 2005, 「5~6세기 百濟의 北界」, 『博物館紀要』 20, 檀國大學校 石宙善紀念博物館
김태식, 2006, 「5~6세기 高句麗와 加耶의 관계」, 『北方史論叢』 11, 고구려연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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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성만은 굳게 지켜 항복하지 않았다.

註 001
국읍(國邑) : 국읍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마한을 한 나라로 볼 경우는 국을 형성한 몇 개의 읍락 가운데 상대적으로 세력이 강하거나 중심 기능을 수행한 대읍락, 즉 건국을 주도한 세력들이 자리 잡은 읍락을 의미하는 국읍(李賢惠, 104쪽; 盧重國, 3~4쪽)을 지칭하며, 이 기사의 국읍은 마한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의 정치적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마한을 여러 나라, 즉 소국의 연맹체로 볼 경우 국과 읍을 지칭한다.
〈참고문헌〉
李賢惠, 1984, 『三韓社會形成過程硏究』, 一潮閣
盧重國, 1989, 「韓國古代의 邑落의 構造와 性格 -國家形成過程과 관련하여-」, 『大丘史學』 38
註 002
왕이 … 그 국읍(國邑)을 병합하였다 : 본서 권23 백제본기1 온조왕대의 기사에서는 백제의 마한 정복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련의 마한 정복과정이 온조왕대에 집약되어 있는데, 백제국이 고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별로 이룩한 사실을 시조의 일로 소급하여 일관되게 정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盧重國, 21쪽). 온조왕대에 나오는 일련의 사실을 관련 지명의 분석과 『일본서기(日本書紀)』 권9 神功紀 49년(249; 수정연대 369)조 기사와의 일치성 검토를 통해 4세기 후반 근초고왕대의 사실이 온조왕대에 투영된 것으로 보아, 백제가 마한의 잔여 소국까지 완전히 병합한 시기에 대해서는 근초고왕대로 보는 견해가 많다(G.K.Ledyard, 1975; 李丙燾, 1976; 盧重國, 1988, 117~122쪽; 유현용, 25~26쪽). 그러나 영산강유역의 대형옹관고분과 같은 고고자료를 근거로 근초고왕대 마한세력에 대한 완전 병합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기도 했다(金英心, 74~75쪽). 최근에는 근초고왕대 마한 통합은 문헌사료로서는 입증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정동준, 2018; 2019).
〈참고문헌〉
G.K.Ledyard, 1975, “Galloping along with the horseriders”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1, No.2
李丙燾, 1976, 「近肖古王拓境考」,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盧重國, 1978, 「百濟王室의 南遷과 支配勢力의 變遷」, 『韓國史論』 4, 서울大學校 國史學科
盧重國, 1988, 『百濟政治史硏究』, 一潮閣
金英心, 1990, 「5~6세기 百濟의 地方統治體制」, 『韓國史論』 22, 서울大學校 國史學科
유현용, 1997, 「溫祚王代 馬韓征服記事의 재고찰」, 『史叢』 46, 고려대학교 역사학연구회
정동준, 2018, 「백제 근초고왕대의 마한 영역화에 대한 사료 재검토」, 『韓國古代史硏究』 91
정동준, 2019, 「문헌사료로 본 백제의 마한 통합과정」, 『百濟學報』 29
註 003
원산성(圓山城)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본서 권23 백제본기1 초고왕 24년(190)조에 보이는 “신라서쪽 경계 원산향[新羅西境圓山鄕]”의 원산향과 동일한 곳으로 보고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에 비정하기도 하나, 예천 용궁은 마한 세력권이 아니므로 지리적으로 맞지 않다. 원산향의 위치에 대해서는 ① 『新增東國輿地勝覽』 권33 전라도 진산현 고적조의 ‘원산향’에 주목하여 충남 진산으로 보는 설(千寬宇, 128쪽), ② 완산을 잘못 베껴쓴 것으로 보아 전북 전주시에 비정하는 견해(全榮來, 1975), ③ 충남 금산 마전리설(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91, 157쪽), ④ 음성의 옛 지명인 잉홀현(仍忽縣)의 ‘잉’이 원과 발음이 비슷하고 ‘홀’이 산의 의미이므로 충북 음성으로 보는 설(김태식, 138~139쪽) 등이 있다.
〈참고문헌〉
全榮來, 1975, 「完山과 比斯伐論」, 『馬韓·百濟文化』 1, 圓光大學校 馬韓·百濟文化硏究所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1991, 『조선전사 3 중세편』,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김태식, 2006, 「5~6세기 高句麗와 加耶의 관계」, 『北方史論叢』 11, 고구려연구재단
註 004
금현성(錦峴城) : 본서 권37 지리4의 삼국유명미상지분(三國有名未詳地分)에 실려 있다. 금현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① 나주설(丁若鏞, 「馬韓考」, 『疆域考』 권1), ② 진안군 부귀면 곰치리설(全榮來, 1975), ③ 충남 연기군 전의면 금성산에 위치한 금이산성설(李丙燾, 57쪽), ④ 고구려의 금물노군인 진천설(閔德植, 47쪽; 김태식, 138쪽), ⑤ 연기군 전동면 금성산성설(梁起錫, 2005) 등이 있다. 온조왕 27년(9) 아산에 대두산성을 축조하고 있는 것과 연계시켜 아산과 가까운 연기 전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참고문헌〉
全榮來, 1975, 「完山과 比斯伐論」, 『馬韓·百濟文化』 1, 圓光大學校 馬韓·百濟文化硏究所
李丙燾, 1976, 『韓國古代史硏究』, 博英社
閔德植, 1983, 「高句麗의 道西縣城考」, 『史學硏究』 36
梁起錫, 2005, 「5~6세기 百濟의 北界」, 『博物館紀要』 20, 檀國大學校 石宙善紀念博物館
김태식, 2006, 「5~6세기 高句麗와 加耶의 관계」, 『北方史論叢』 11, 고구려연구재단
주제분류
정치>군사>군사조직>군사전략
색인어
국명 : 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