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랑의 서쪽 현을 기습하여 점령하다 ( 304년 02월(음) )

7년(304)001001 7년 :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을 따른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왕력편에는 “무오(戊午)에 즉위해서 6년을 다스렸다”라고 하였다.닫기 봄 2월에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002002 봄 2월에 …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 대동강 유역의 낙랑군과 한강 유역의 백제 사이에는 지금의 황해도지역에 대방군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가 낙랑군의 군현을 직접 빼앗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방’을 ‘낙랑’으로 잘못 쓴 것이거나 군현의 상징성 때문에 대방 대신 낙랑으로 기록했다는 추정도 있지만 근거는 없다. 다만, 책계왕 때 백제와 대방군이 화친을 맺었으며 고구려가 침입할 때 군사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기록에 비추어보면 대방을 잘못 쓴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닫기

註 001
7년 : 유년칭원법(踰年稱元法)을 따른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왕력편에는 “무오(戊午)에 즉위해서 6년을 다스렸다”라고 하였다.
註 002
봄 2월에 …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 대동강 유역의 낙랑군과 한강 유역의 백제 사이에는 지금의 황해도지역에 대방군이 있었기 때문에 백제가 낙랑군의 군현을 직접 빼앗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대방’을 ‘낙랑’으로 잘못 쓴 것이거나 군현의 상징성 때문에 대방 대신 낙랑으로 기록했다는 추정도 있지만 근거는 없다. 다만, 책계왕 때 백제와 대방군이 화친을 맺었으며 고구려가 침입할 때 군사적으로 도와주었다는 기록에 비추어보면 대방을 잘못 쓴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정치>군사>전쟁>전투유형
색인어
지명 : 낙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