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읍을 한산으로 옮기다 ( 371년 (음) )

〔26년(371)〕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001001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 : 앞의 문구와 연결하여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王引軍退] 도읍인 한산으로 왔다[移都漢山]”고 해석하는 견해(千寬宇, 1976)도 있으나, 평양성을 공격한 군사들의 퇴각과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왕력편에는 이때 “북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移都北漢山]”는 기록이 있으므로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 지금의 북한산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라는 해석(李道學, 32쪽)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산성에서는 아직 백제 때의 성곽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학계는 대개 본 기사의 한산을 남한산으로 해석하고 고구려의 반격에 대비해 도읍을 잠시 산성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거나(李丙燾, 375쪽), 기존의 하남위례성을 왕성으로 한 도읍체제에서 평지의 북성과 산지의 남성을 연계한 한성 도읍체제로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참고문헌〉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李道學, 1992, 「百濟 漢城時期의 都城制에 관한 檢討」, 『韓國上古史學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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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001
도읍을 한산(漢山)으로 옮겼다 : 앞의 문구와 연결하여 “왕이 군사를 이끌고 물러나[王引軍退] 도읍인 한산으로 왔다[移都漢山]”고 해석하는 견해(千寬宇, 1976)도 있으나, 평양성을 공격한 군사들의 퇴각과 도읍을 옮겼다는 기록으로 나누어 해석하는 것이 보통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왕력편에는 이때 “북한산으로 도읍을 옮겼다[移都北漢山]”는 기록이 있으므로 근초고왕이 고구려를 더욱 압박하기 위해 지금의 북한산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라는 해석(李道學, 32쪽)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산성에서는 아직 백제 때의 성곽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학계는 대개 본 기사의 한산을 남한산으로 해석하고 고구려의 반격에 대비해 도읍을 잠시 산성으로 옮긴 것이라고 하거나(李丙燾, 375쪽), 기존의 하남위례성을 왕성으로 한 도읍체제에서 평지의 북성과 산지의 남성을 연계한 한성 도읍체제로의 변화를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참고문헌〉
千寬宇, 1976, 「三韓의 國家形成(下)」, 『韓國學報』 3, 一志社
李丙燾, 1977, 『國譯 三國史記』, 乙酉文化社
李道學, 1992, 「百濟 漢城時期의 都城制에 관한 檢討」, 『韓國上古史學報』 9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활동(결혼·통치)
색인어
지명 : 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