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사왕이 죽다 ( 392년 11월(음) )

11월에 왕이 구원의 행궁(行宮)016016 왕이 거동할 때 머무는 곳으로 행재소(行在所)라고도 한다.닫기에서 죽었다.017017 백제는 석현성 등 10성이 상실되고 북변의 요충지인 관미성마저 함락되자 일대 위기감이 팽배하였다. 백제는 관미성이 함락되어 제해권을 상실하고 서해 방면은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관미성의 상실은 396년에 광개토왕이 수군을 이끌고 서해를 통하여 수도 한성을 공격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만큼 백제에게는 큰 타격이 되었다. 진사왕은 위기를 돌파하고자 구원(狗原)에서 전렵(田獵)을 통해 지배세력의 동요를 막고 결속을 다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사왕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일본서기》 권10, 응신기 3불교 공인의 기록과 같이 자신이 살해되고 말았다. 백제는 관미성 상실로 말미암아 지배층의 위기감이 상당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귀족 세력은 진사왕을 제거한 후 아신왕을 즉위케 한 것으로 짐작된다. 진사왕은 392년에 벌어진 고구려전의 패배에 대한 사후 수습책을 놓고 지배세력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벌어져 피살되고 말았다(양기석, 「백제전제왕권성립과정연구」, 단국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76쪽).닫기

註 016
왕이 거동할 때 머무는 곳으로 행재소(行在所)라고도 한다.
註 017
백제는 석현성 등 10성이 상실되고 북변의 요충지인 관미성마저 함락되자 일대 위기감이 팽배하였다. 백제는 관미성이 함락되어 제해권을 상실하고 서해 방면은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관미성의 상실은 396년에 광개토왕이 수군을 이끌고 서해를 통하여 수도 한성을 공격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만큼 백제에게는 큰 타격이 되었다. 진사왕은 위기를 돌파하고자 구원(狗原)에서 전렵(田獵)을 통해 지배세력의 동요를 막고 결속을 다지려고 하였다. 그러나 진사왕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일본서기》 권10, 응신기 3불교 공인의 기록과 같이 자신이 살해되고 말았다. 백제는 관미성 상실로 말미암아 지배층의 위기감이 상당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귀족 세력은 진사왕을 제거한 후 아신왕을 즉위케 한 것으로 짐작된다. 진사왕은 392년에 벌어진 고구려전의 패배에 대한 사후 수습책을 놓고 지배세력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벌어져 피살되고 말았다(양기석, 「백제전제왕권성립과정연구」, 단국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76쪽).
주제분류
정치>왕실>국왕>신상
색인어
지명 :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