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수 전투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출전하다 ( 395년 11월(음) )

겨울 11월에 왕이 패수전투의 패배를 보복하기 위하여, 직접 군사 7천 명을 거느리고 한수를 건너 청목령027027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靑木山과 연관된다. 청목산에 대해 《新增東國輿地勝覽》 권4 開城府 山川條에는 “松嶽(在府北五里 鎭山 初名扶蘇 又稱鵠嶺…按百濟始祖十年…百濟軍敗績 依靑木山自保…賊乃退 所謂靑木山疑卽此”라 하여 현재의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에 비정하고 있다. 한편 安鼎福은 《東史綱目》 제1 上 壬子 馬韓 百濟始祖 10년조에서 개성 서북의 靑石洞(현재의 경기도 開豊郡 嶺南面 天摩山)으로 비정하고 있다.닫기 아래에 진을 쳤다. 그때 마침 큰 눈이 내려 병졸들 가운데 동사한 자가 많이 발생하자 왕은 회군하여 한산성에 와서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註 027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靑木山과 연관된다. 청목산에 대해 《新增東國輿地勝覽》 권4 開城府 山川條에는 “松嶽(在府北五里 鎭山 初名扶蘇 又稱鵠嶺…按百濟始祖十年…百濟軍敗績 依靑木山自保…賊乃退 所謂靑木山疑卽此”라 하여 현재의 경기도 개성시 송악산에 비정하고 있다. 한편 安鼎福은 《東史綱目》 제1 上 壬子 馬韓 百濟始祖 10년조에서 개성 서북의 靑石洞(현재의 경기도 開豊郡 嶺南面 天摩山)으로 비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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