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국과 우호관계를 맺고 태자를 파견하다 ( 397년 05월(음) )

6년 여름 5월에 왕이 왜국028028 백제와 통교한 왜인의 본거지에 대해서는 왜=가야 입장, 일본 열도에 거주하였다는 견해, 한반도 남부와 구주(九州) 북부 일대를 그 세력권으로 하였다는 양재설(兩在說) 등이 있다. 그러나 백제와 관계를 맺은 왜국을 구주 북부지방의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기동, 「백제의 발흥과 대왜국관계의 성립」, 《고대 한일문화교류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백제와 왜국의 관계는 근초고왕 때에 시작되었지만 아신왕이 전지를 파견하면서 더욱 밀접한 사이로 발전되었다.닫기과 우호 관계를 맺고029029 이 같은 사실은 《광개토왕릉비》에는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으로 나온다.닫기 태자 전지(腆支)를 인질로 보냈다.030030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는 내용의 실상은 청병사에 가까운 외교적 임무를 띤 국왕의 특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양기석, 「삼국시대 인질의 성격에 대하여」, 《사학지》 15, 1981 | 나행주, 「고대한일관계에 있어서의 질의 의미」, 《건대사학》 8, 1993). 아신왕이 차기 왕위 계승자인 전지를 왜국에 파견한 것은 백제의 위급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으로 장기적 전망 속에서 나온 군사외교였다. 그러나 왕위 계승권을 가진 전지가 왜에 파견된 것을 지배세력 간의 대립으로 인한 정략적 추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양기석, 「백제 전지왕대의 정치적 변혁」, 《호서사학》 10, 1982, 16쪽).닫기

註 028
백제와 통교한 왜인의 본거지에 대해서는 왜=가야 입장, 일본 열도에 거주하였다는 견해, 한반도 남부와 구주(九州) 북부 일대를 그 세력권으로 하였다는 양재설(兩在說) 등이 있다. 그러나 백제와 관계를 맺은 왜국을 구주 북부지방의 집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이기동, 「백제의 발흥과 대왜국관계의 성립」, 《고대 한일문화교류 연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0). 백제와 왜국의 관계는 근초고왕 때에 시작되었지만 아신왕이 전지를 파견하면서 더욱 밀접한 사이로 발전되었다.
註 029
이 같은 사실은 《광개토왕릉비》에는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으로 나온다.
註 030
아신왕이 왜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전지를 인질로 보냈다는 내용의 실상은 청병사에 가까운 외교적 임무를 띤 국왕의 특사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양기석, 「삼국시대 인질의 성격에 대하여」, 《사학지》 15, 1981 | 나행주, 「고대한일관계에 있어서의 질의 의미」, 《건대사학》 8, 1993). 아신왕이 차기 왕위 계승자인 전지를 왜국에 파견한 것은 백제의 위급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으로 장기적 전망 속에서 나온 군사외교였다. 그러나 왕위 계승권을 가진 전지가 왜에 파견된 것을 지배세력 간의 대립으로 인한 정략적 추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양기석, 「백제 전지왕대의 정치적 변혁」, 《호서사학》 10, 1982, 16쪽).
주제분류
정치>외교>수교>나라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색인어
이름 : 전지
국명 : 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