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왕이 즉위하다 ( 405년 09월(음) )

전지왕(腆支王)037037 백제의 18대 왕으로 아신왕의 맏아들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전지왕의 이름에 대해 본 기사의 細注 및 《日本書紀》 권10 應神紀 16년조에는 直支로, 《梁書》 권54 열전 백제전에는 映으로,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第十八腆支王 一作眞支王 名映”으로, 《通典》 권180 변방1 동이 백제전에는 扶餘腆으로 나온다. 아신왕 6년(397)년에 왜국에 인질로 가 있다가 부왕이 죽자 귀국하여 숙부 碟禮를 지지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다. 전지왕대에는 해씨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상좌평을 설치하여 군국정사를 총괄하게 하였다.닫기 혹은 직지(直支)라고도 한다.의 이름을 《양서(梁書)》038038 중국 25史 중의 하나. 중국 남조의 梁나라의 역사책이다. 《梁書》는 陳나라의 吏部尙書였던 姚察이 陳나라 大建中(570년대)에 梁·陳 二史를 修撰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그 아들 姚思廉이 아버지의 遺言에 의해 唐나라 貞觀 3년(629)부터 그 사업을 계속하여 정관 10년(636)에 완성하였다. 본기와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56권이다.닫기에서는 (映)이라고 하였다. 그는 아신왕의 맏아들로서, 아신왕 재위 3년에 태자가 되었고, 6년에 왜국에 인질로 갔다. 14년에 아신왕이 사망하자 왕의 둘째 동생 훈해(訓解)가 정사를 대리하며 태자의 귀국을 기다렸는데 왕의 막내 동생 첩례(諜禮)가 훈해를 죽이고 자기가 왕이 되었다. 이때 전지왜국에서 부고를 듣고 울면서 귀국을 요청하니 왕이 1백 명의 군사로 하여금 그를 보호하여 귀국하게 하였다.039039 이 기사는 전지가 즉위하는 데 왜군이 일조를 한 것을 보여준다. 한편 전지가 왜국에서 돌아오는 것과 관련하여 《일본서기》 권10 應神紀 16년조에는 “是歲 百濟阿花王薨 天皇召直支王謂之曰 汝返於國 以嗣位 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東韓者 甘羅城 高難城 爾林城 是也)”로 나온다.닫기 그가 국경에 이르자 한성 사람 해충(解忠)이 와서 고하기를 “대왕이 죽은 후에, 왕의 동생 첩례가 형을 죽이고 자기가 왕위에 올랐으니, 태자께서는 경솔히 들어오지 마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전지인을 체류시켜 자기를 호위하게 하면서, 바다 가운데의 섬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백성들이 첩례를 죽이고 전지를 맞이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040040 전지왕의 즉위에는 해충(解忠)을 비롯한 해씨 세력의 지원이 컸으므로 종래의 진씨(眞氏)를 대신하여 해씨가 외척으로 등장하는 등 귀족 세력이 재편되었다. 전지왕은 해충을 달솔(達率)로 삼고 한성의 조(租) 1,000석을 하사하였으며, 해수(解須)를 내법좌평,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에 각각 임명하였다. 그리고 전지왕의 왕비를 해씨에서 맞아들여 해씨 세력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전지왕 이후 삼근왕까지 5대에 걸쳐 해씨에서 왕비가 나오던 시대를 ‘진씨왕비족 시대’와 대비시켜 ‘해씨왕비족시대’로 부른다(이기백, 「백제왕위계승고」, 《역사학보》 11, 1959, 31~35쪽).닫기 왕비는 팔수부인(八須夫人)이다. 그녀는 아들 구이신(久爾辛)을 낳았다.

註 037
백제의 18대 왕으로 아신왕의 맏아들이다. 재위 기간은 405~420년이다. 전지왕의 이름에 대해 본 기사의 細注 및 《日本書紀》 권10 應神紀 16년조에는 直支로, 《梁書》 권54 열전 백제전에는 映으로, 《삼국유사》 王曆篇에는 “第十八腆支王 一作眞支王 名映”으로, 《通典》 권180 변방1 동이 백제전에는 扶餘腆으로 나온다. 아신왕 6년(397)년에 왜국에 인질로 가 있다가 부왕이 죽자 귀국하여 숙부 碟禮를 지지하는 세력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다. 전지왕대에는 해씨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상좌평을 설치하여 군국정사를 총괄하게 하였다.
註 038
중국 25史 중의 하나. 중국 남조의 梁나라의 역사책이다. 《梁書》는 陳나라의 吏部尙書였던 姚察이 陳나라 大建中(570년대)에 梁·陳 二史를 修撰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그 아들 姚思廉이 아버지의 遺言에 의해 唐나라 貞觀 3년(629)부터 그 사업을 계속하여 정관 10년(636)에 완성하였다. 본기와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총 56권이다.
註 039
이 기사는 전지가 즉위하는 데 왜군이 일조를 한 것을 보여준다. 한편 전지가 왜국에서 돌아오는 것과 관련하여 《일본서기》 권10 應神紀 16년조에는 “是歲 百濟阿花王薨 天皇召直支王謂之曰 汝返於國 以嗣位 仍且賜東韓之地而遣之(東韓者 甘羅城 高難城 爾林城 是也)”로 나온다.
註 040
전지왕의 즉위에는 해충(解忠)을 비롯한 해씨 세력의 지원이 컸으므로 종래의 진씨(眞氏)를 대신하여 해씨가 외척으로 등장하는 등 귀족 세력이 재편되었다. 전지왕은 해충을 달솔(達率)로 삼고 한성의 조(租) 1,000석을 하사하였으며, 해수(解須)를 내법좌평, 해구(解丘)를 병관좌평에 각각 임명하였다. 그리고 전지왕의 왕비를 해씨에서 맞아들여 해씨 세력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전지왕 이후 삼근왕까지 5대에 걸쳐 해씨에서 왕비가 나오던 시대를 ‘진씨왕비족 시대’와 대비시켜 ‘해씨왕비족시대’로 부른다(이기백, 「백제왕위계승고」, 《역사학보》 11, 1959, 3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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