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충이 대야성을 함락하다 ( 642년 08월(음) )

8월 장군 윤충(尹忠)011011 백제 의자왕대의 인물. 신라의 大耶城을 함락시켜 도독 品釋을 죽였다. 이외에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닫기을 보내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신라의 대야성012012 대야성은 경남 합천읍에 위치한 해발 90m의 매봉산 정상을 흙과 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다. 대야성 전투는 백제의 옛 가야 지역 진출을 위한 공세가 절정에 달한 사건이었다. 대야성은 낙동강 서쪽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백제가 장악하지 못한 가야지역의 마지막 보루이었다. 대야성이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가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경남 서부지역의 통치거점으로 삼은 이후였다. 대야성은 육십령과 팔령치를 통과하여 소백산맥을 넘어 온 백제군을 방어하면서 경남 서부지역을 통괄하는 거점이었다(문안식,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2006 , 407쪽).닫기을 공격하였다. 성주 품석(品釋)013013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사위로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 장군 윤충의 공격을 받아 부인과 함께 전사하였다.닫기이 처자014014 대야성 도독 품석의 처에 대해 《삼국사기》 권41 열전 김유신전 上에는 “春秋公女子古陀炤娘從夫品釋死焉”이라 하여 ‘古陀炤娘’으로 나온다.닫기를 데리고 나와 항복하자 윤충이 그들을 모두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서울에 보내고 남녀 1천여 명을 사로잡아 서쪽 지방의 주, 현에 나누어 살게 하고 군사를 남겨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015015 의자왕은 대야성을 점령하여 낙동강 서안의 옛 가야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주로 진출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마련하였다. 그 반면에 신라는 백제에 대한 방어 거점을 낙동강 동안에 있는 압량주(경북 경산)로 대거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백제는 무왕이 함양과 거창·산청 등에 교두보를 확보한 데 이어, 의자왕의 집권 초반에 미후성 등 40성의 공취와 대야성 함락으로 낙동강 서안에 위치한 옛 가야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다.닫기 왕이 윤충의 공로를 표창하여 말 20필과 곡식 1천 석을 주었다.

註 011
백제 의자왕대의 인물. 신라의 大耶城을 함락시켜 도독 品釋을 죽였다. 이외에 구체적인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12
대야성은 경남 합천읍에 위치한 해발 90m의 매봉산 정상을 흙과 돌을 이용하여 쌓은 성이다. 대야성 전투는 백제의 옛 가야 지역 진출을 위한 공세가 절정에 달한 사건이었다. 대야성은 낙동강 서쪽 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백제가 장악하지 못한 가야지역의 마지막 보루이었다. 대야성이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신라가 대가야를 멸망시키고 경남 서부지역의 통치거점으로 삼은 이후였다. 대야성은 육십령과 팔령치를 통과하여 소백산맥을 넘어 온 백제군을 방어하면서 경남 서부지역을 통괄하는 거점이었다(문안식, 《백제의 흥망과 전쟁》, 혜안, 2006 , 407쪽).
註 013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사위로 대야성 도독으로 있다가 백제 장군 윤충의 공격을 받아 부인과 함께 전사하였다.
註 014
대야성 도독 품석의 처에 대해 《삼국사기》 권41 열전 김유신전 上에는 “春秋公女子古陀炤娘從夫品釋死焉”이라 하여 ‘古陀炤娘’으로 나온다.
註 015
의자왕은 대야성을 점령하여 낙동강 서안의 옛 가야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경주로 진출할 수 있는 전진기지를 마련하였다. 그 반면에 신라는 백제에 대한 방어 거점을 낙동강 동안에 있는 압량주(경북 경산)로 대거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백제는 무왕이 함양과 거창·산청 등에 교두보를 확보한 데 이어, 의자왕의 집권 초반에 미후성 등 40성의 공취와 대야성 함락으로 낙동강 서안에 위치한 옛 가야 지역을 석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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