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시조묘 제사에 대한 《고기》의 기록

신대왕(新大王)169169 고구려 8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165~179년이다. 본명은 백고(伯固) 혹은 백구(伯句). 대조대왕(大祖大王)의 계제(季弟)이다. 차대왕(次大王)이 무도(無道)하여 도망했다가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차대왕을 살해하고 좌보(左輔) 어지류(菸支留) 등이 백고를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이때 신대왕(新大王)은 77세였다. 즉위 후 좌보(左輔), 우보(右輔)를 국상(國相)으로 고쳤다. 한(漢)의 침공(侵攻)에 들을 비우고 성(城)에서 지키는 청야수성전(淸野守城戰)으로 막아냈다.(고구려본기, 제4 신대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4년(168) 가을 9월에 졸본(卒本)에 이르러 시조묘(始祖墓)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국천왕(故國川王)170170 고구려 9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179~197년이다. 혹은 국양왕(國襄王 또는 國壤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남무(男武) 혹은 이이모(伊夷謨). 신대왕(新大王) 백고(伯固)의 둘째 아들이다. 신대왕이 사망했을 때 사람들이 장자(長子) 발기(拔奇)가 불초(不肖)함을 이유로 삼아 둘째인 남무를 추대하여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즉위했다. 귀족 세력을 견제하며 중앙집권을 위한 정책을 모색하였다.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서 진대법(賑貸法)을 시행했다. 고국천원(故國川原)에 묻혔다.(고구려본기, 제4 고국천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원년(179) 가을 9월, 동천왕(東川王)171171 고구려 11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227~248년이다. 동양왕(東襄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우위거(憂位居), 어릴 때의 이름은 교체(郊彘). 산상왕(山上王)의 아들, 어머니는 주통촌(酒桶村) 출신 소비(小妃)이다. 동천왕(東川王) 재위 기간은 공손씨(公孫氏), 오(吳), 위(魏)등 힘에 의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었음으로 고구려의 대외관계 역시 이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하였다. 246년 위(魏)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母丘儉)의 침공으로 국도(國都)인 환도성(丸都城)이 파괴되었고 동천왕은 남옥저(南沃沮) 등으로 피신했다. 관구검 퇴군(退軍)후 환도성은 다시 도읍할 수 없어서 왕은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이도(移都)하였다고 한다. 왕의 은덕을 사모해 따라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구려본기, 제5 동천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2년(228) 봄 2월, 중천왕(中川王)172172 고구려 12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248~270년이다. 중양왕(中壤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연불(然弗). 동천왕의 아들이며 비(妃)는 연씨(椽氏). 위(魏)의 위지해(慰遲楷)의 침공을 막아냈다. 중천원(中川原)에 장사지냈다.(고구려본기, 제5 중천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13년(260) 가을 9월, 고국원왕(故國原王)173173 고구려 16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331~371년이다. 국강상왕(國岡上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사유(斯由) 혹은 유(劉). 미천왕(美川王)의 태자, 어머니는 주씨부인(周氏夫人)이다.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전연(前燕)의 왕 모용황(慕容皝)이 침공하여 국도(國都)인 국내성(國內城)이 함락되었다. 고국원왕은 도망하고,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부왕(父王)인 미천왕의 시신을 파서 가져가고, 왕모(王母), 왕비(王妃)를 비롯한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후 스스로 신하를 자칭하여 전연에 입조(入朝)하였다. 369년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서 치양(雉壤)에 주둔 했으나 패했고, 371년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에게 의해서 전사했다. 고국원(故國原)에 장사했다.(고구려본기, 제6 고국원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2년(332) 봄 2월, 안장왕(安藏王)174174 고구려 22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19~531년이다. 본명은 흥안(興安). 문자명왕(文咨明王)의 장자(長子).(고구려본기, 제7 안장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3년(521) 여름 4월, 평원왕(平原王)175175 고구려 2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혹은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양성(陽成) 혹은 탕(湯). 양원왕(陽原王)의 장자(長子)이다.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노력하였다. 국도(國道)를 장안성(長安城)으로 이도(移都)하였다. 수(隋)가 진(陳)을 멸하고 통일하자 수의 침공에 대비하였다.(고구려본기, 제7 평원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2년(560) 봄 2월, 건무왕(建武王)176176 고구려 27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618~642년이다. 본명은 건무(建武) 혹은 성(成). 영양왕(嬰陽王)의 이모제(異母弟)이다. 수(隋)가 멸망한 후 당(唐)이 서자 조공(朝貢)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였다. 이복 동생이다. 즉위한 해인 618년(영류왕 1) 수(隋)나라가 망하고 당(唐)나라가 서자 곧 사신을 보내 평화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당이 고구려가 수(隋)를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경관(京觀)을 헐어 버리는 등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남방으로는 신라(新羅) 김유신(金庾信)의 공격으로 낭비성(娘臂城)을 빼앗기기도 했다. 영류왕은 재위 25년에 개소문(蓋蘇文)이 정변을 일으켜 시해 당했다.(고구려본기, 제8 영류왕 및 역주 표영관)닫기 2년(619) 봄 4월에도 모두 위와 같이 행하였다.

註 169
고구려 8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165~179년이다. 본명은 백고(伯固) 혹은 백구(伯句). 대조대왕(大祖大王)의 계제(季弟)이다. 차대왕(次大王)이 무도(無道)하여 도망했다가 명림답부(明臨答夫)가 차대왕을 살해하고 좌보(左輔) 어지류(菸支留) 등이 백고를 추대하여 왕으로 삼았다. 이때 신대왕(新大王)은 77세였다. 즉위 후 좌보(左輔), 우보(右輔)를 국상(國相)으로 고쳤다. 한(漢)의 침공(侵攻)에 들을 비우고 성(城)에서 지키는 청야수성전(淸野守城戰)으로 막아냈다.(고구려본기, 제4 신대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0
고구려 9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179~197년이다. 혹은 국양왕(國襄王 또는 國壤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남무(男武) 혹은 이이모(伊夷謨). 신대왕(新大王) 백고(伯固)의 둘째 아들이다. 신대왕이 사망했을 때 사람들이 장자(長子) 발기(拔奇)가 불초(不肖)함을 이유로 삼아 둘째인 남무를 추대하여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즉위했다. 귀족 세력을 견제하며 중앙집권을 위한 정책을 모색하였다.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서 진대법(賑貸法)을 시행했다. 고국천원(故國川原)에 묻혔다.(고구려본기, 제4 고국천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1
고구려 11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227~248년이다. 동양왕(東襄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우위거(憂位居), 어릴 때의 이름은 교체(郊彘). 산상왕(山上王)의 아들, 어머니는 주통촌(酒桶村) 출신 소비(小妃)이다. 동천왕(東川王) 재위 기간은 공손씨(公孫氏), 오(吳), 위(魏)등 힘에 의한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이었음으로 고구려의 대외관계 역시 이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응하였다. 246년 위(魏)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母丘儉)의 침공으로 국도(國都)인 환도성(丸都城)이 파괴되었고 동천왕은 남옥저(南沃沮) 등으로 피신했다. 관구검 퇴군(退軍)후 환도성은 다시 도읍할 수 없어서 왕은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이도(移都)하였다고 한다. 왕의 은덕을 사모해 따라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구려본기, 제5 동천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2
고구려 12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248~270년이다. 중양왕(中壤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연불(然弗). 동천왕의 아들이며 비(妃)는 연씨(椽氏). 위(魏)의 위지해(慰遲楷)의 침공을 막아냈다. 중천원(中川原)에 장사지냈다.(고구려본기, 제5 중천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3
고구려 16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331~371년이다. 국강상왕(國岡上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사유(斯由) 혹은 유(劉). 미천왕(美川王)의 태자, 어머니는 주씨부인(周氏夫人)이다.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전연(前燕)의 왕 모용황(慕容皝)이 침공하여 국도(國都)인 국내성(國內城)이 함락되었다. 고국원왕은 도망하고, 모용황은 고국원왕의 부왕(父王)인 미천왕의 시신을 파서 가져가고, 왕모(王母), 왕비(王妃)를 비롯한 5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갔다. 이후 스스로 신하를 자칭하여 전연에 입조(入朝)하였다. 369년 백제를 침공하기 위해서 치양(雉壤)에 주둔 했으나 패했고, 371년 평양성에서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에게 의해서 전사했다. 고국원(故國原)에 장사했다.(고구려본기, 제6 고국원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4
고구려 22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19~531년이다. 본명은 흥안(興安). 문자명왕(文咨明王)의 장자(長子).(고구려본기, 제7 안장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5
고구려 25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559~590년이다. 혹은 평강상호왕(平崗上好王)이라고도 한다. 본명은 양성(陽成) 혹은 탕(湯). 양원왕(陽原王)의 장자(長子)이다. 백성들의 생활 안정에 노력하였다. 국도(國道)를 장안성(長安城)으로 이도(移都)하였다. 수(隋)가 진(陳)을 멸하고 통일하자 수의 침공에 대비하였다.(고구려본기, 제7 평원왕 및 역주 표영관)
註 176
고구려 27대왕으로 재위 기간은 618~642년이다. 본명은 건무(建武) 혹은 성(成). 영양왕(嬰陽王)의 이모제(異母弟)이다. 수(隋)가 멸망한 후 당(唐)이 서자 조공(朝貢)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였다. 이복 동생이다. 즉위한 해인 618년(영류왕 1) 수(隋)나라가 망하고 당(唐)나라가 서자 곧 사신을 보내 평화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당이 고구려가 수(隋)를 격퇴한 기념으로 세운 경관(京觀)을 헐어 버리는 등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자 전쟁에 대비하기 위하여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남방으로는 신라(新羅) 김유신(金庾信)의 공격으로 낭비성(娘臂城)을 빼앗기기도 했다. 영류왕은 재위 25년에 개소문(蓋蘇文)이 정변을 일으켜 시해 당했다.(고구려본기, 제8 영류왕 및 역주 표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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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례>제사>조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