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송(宋) 사신(使臣) 유규(劉逵), 오식(吳拭)이註 017017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호부 시랑(戶部侍郞) 유규(劉逵)와 급사중(給事中) 오식(吳拭)이 북송 숭녕(崇寧) 원년(1102)에 휘종의 명을 받고 이듬해 5월에 고려에 입국했다고 한다.닫기 내빙하여 숙소에 묵고 있을 때 연회에서 향장(鄕粧)註 018018 고유의 복식으로 단장한닫기한 기생(倡女)을 보고서 계단 위로 불러와서 활수의註 019019 넓은 소매의 옷을 말한다. 광수(廣袖)라고도 하며 이때 들어온 당나라 활수(闊袖)의 포제(袍制)가 이후 우리나라 한복 여성 예복인 원삼의 기원이 되었다.닫기와 색사대註 020020 색사대 색실로 꾸민 혁대닫기, 대군註 021021 큰 치마이다.닫기을 가리키며 찬탄(嘆註 022022 정덕본(正德本)에는 한(漢)으로 표기하였다. 주자본(주자본)에 따라 탄(嘆)으로 수정 교감하여 주해한다.닫기)하여 말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삼대(三代)註 023023 고대중국(古代中國)의 세 왕조(王朝)인 하(夏), 은(殷: 혹은 상(商)), 주(周)를 말한다.(역주 표영관)닫기 옷인데, 여전히 쓰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註 024024 이 대화는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실려 있다.닫기 이러한 것들로 볼 때 지금 부녀의 예복(禮服)도 대개 당(唐)의 옛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