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국고기에서 보이는 고구려 관직

좌보(左輔)327327 고구려와 백제의 초기 官制. 軍國政事를 관장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닫기·우보(右輔)328328 고구려와 백제의 초기 官制. 좌보와 더불어 軍國政事를 관장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닫기·대주부(大主簿)329329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대주부는 主簿에서 격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부는 圖籍과 文簿를 담당하는 관이다. 따라서 대주부도 이와 비슷한 직능을 수행하였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닫기·국상(國相)330330 고구려 신대왕 2년(166)에 설치한 관직. 종래 군국정사를 관장하였던 좌우보를 개편하여 만든 것으로서(권16 고구려본기 신대왕(新大王) 2년의 ‘改左右輔爲國相 始於此’ 참조). 이 국상은 귀족회의체(貴族會議體)=제가회의체(諸加會議體)의 의장의 기능을 하였다. 국상의 설치로 왕의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되었으며, 국상은 왕권과 귀족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였다(노중국, 《고구려국상고》 상 《한국학보》 16, 1979 참조). 이외에 관료적 성격이 강한 군신 집단의 長으로 보는 견해(이종욱, 「고구려 초기의 좌우보와 국상」, 《전해종교수화갑기념논총》, 1979, 506~508쪽), 국상의 설치는 관제를 직능위주의 막료체제로 개편한 것으로 파악한 견해(김광수, 「고구려의 ‘국상’직」, 《이원순교수정년기넘논총》, 1991, 8~9쪽) 등이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닫기·구사자(九使者)331331 고구려 관등의 하나. 권17 고구려본기 동천왕(東川王) 20년에서만 나온다. 구체적인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사자계의 관등이 분화되면서 大使者·九使者 등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九使者를 신분의 차이에 따른 관등 승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신라의 중위제(重位制)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닫기·중외대부(中畏大夫).332332 고구려 초기의 관직. 이 中畏를 中裏와 같은 것으로 보고 官位에 中裏가 앞에 붙은 관료는 國王近侍의 官僚群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武田幸男, 《六世紀における朝鮮三國の國家體制》, 《日本古代史講座》 4, 朝鮮三國と倭國, 1980, 56~57쪽). 그렇다고 하면 中畏(中裏)大夫도 近侍官僚라고 할 수 있겠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618쪽).닫기 이상은 본국고기(本國古記)에서 보인다.

註 327
고구려와 백제의 초기 官制. 軍國政事를 관장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
註 328
고구려와 백제의 초기 官制. 좌보와 더불어 軍國政事를 관장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
註 329
명칭에서 미루어 볼 때 대주부는 主簿에서 격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주부는 圖籍과 文簿를 담당하는 관이다. 따라서 대주부도 이와 비슷한 직능을 수행하였을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
註 330
고구려 신대왕 2년(166)에 설치한 관직. 종래 군국정사를 관장하였던 좌우보를 개편하여 만든 것으로서(권16 고구려본기 신대왕(新大王) 2년의 ‘改左右輔爲國相 始於此’ 참조). 이 국상은 귀족회의체(貴族會議體)=제가회의체(諸加會議體)의 의장의 기능을 하였다. 국상의 설치로 왕의 위상은 한 단계 격상되었으며, 국상은 왕권과 귀족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하였다(노중국, 《고구려국상고》 상 《한국학보》 16, 1979 참조). 이외에 관료적 성격이 강한 군신 집단의 長으로 보는 견해(이종욱, 「고구려 초기의 좌우보와 국상」, 《전해종교수화갑기념논총》, 1979, 506~508쪽), 국상의 설치는 관제를 직능위주의 막료체제로 개편한 것으로 파악한 견해(김광수, 「고구려의 ‘국상’직」, 《이원순교수정년기넘논총》, 1991, 8~9쪽) 등이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
註 331
고구려 관등의 하나. 권17 고구려본기 동천왕(東川王) 20년에서만 나온다. 구체적인 성격은 알 수 없으나 사자계의 관등이 분화되면서 大使者·九使者 등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九使者를 신분의 차이에 따른 관등 승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신라의 중위제(重位制)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쪽).
註 332
고구려 초기의 관직. 이 中畏를 中裏와 같은 것으로 보고 官位에 中裏가 앞에 붙은 관료는 國王近侍의 官僚群으로 파악하는 견해도 있다(武田幸男, 《六世紀における朝鮮三國の國家體制》, 《日本古代史講座》 4, 朝鮮三國と倭國, 1980, 56~57쪽). 그렇다고 하면 中畏(中裏)大夫도 近侍官僚라고 할 수 있겠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617~618쪽).
주제분류
정치>행정>관직>중앙관직
색인어
관서 :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