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할아버지 [김]무력(武力)021021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에는 ‘茂力’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同音異字의 표기이며, 《삼국유사》 권1 기이편 김유신조에서는 ‘虎力’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고려 혜종의 이름인 ‘武’자의 음을 피휘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단양적성비·황초령 진흥왕순수비·마운령 진흥왕순수비 등에는 ‘另力’으로 표기되어 있다(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Ⅱ,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63쪽). 仇衡王과 김무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가락국기의 세계《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법흥왕 19년조에 모두 부자 관계(차남 혹은 삼남)로 되어 있지만, 가락국기의 首露王廟에 대한 기사에서는 구형왕 이후의 계보가 구형왕 - 世宗 - 率友公 - 庶云으로 되어 있어 김무력이 빠져 있다. 가락국기의 세계에 의하면 世宗은 茂力의 형이며, 庶云은 김무력의 아들인 金舒玄이다. 이에 대하여 이 계보가 가야의 멸망 후 首露墓의 司祭者를 기록한 것으로, 구형왕이 죽은 뒤 그 장남인 세종이 뒤를 이었으나 다시 그가 죽은 뒤에는 그 아우인 김무력이 뒤를 이어 率友公이라 불렸거나, 또는 솔우공이 이 金國公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설 등(村上四男, 「金官國の世系と率支公」, 《朝鮮學報》 21·22, 1961「朝鮮古代史硏究」, 開明書院, 1978, 372~384쪽 | 이기동·이기백, 「한국사강좌 -고대편-」, 일조각, 1982, 163~164쪽)이 제기된 바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46~647쪽).닫기은 신주도행군총관(新州道行軍摠管)022022 新州는 진흥왕 14년(553)에 한강 하류 지역을 백제로부터 탈취한 이후 설치한 주이다. 道는 이 지역 또는 방향을 뜻하며, 행군은 출정군대를, 총관은 총지휘관을 의미한다. 총관은 당나라 군사의 편제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47쪽).닫기이 되어 일찍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아가] 백제 왕023023 백제의 聖王을 가리키며, 당시의 상황은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일본서기》 권19 欽明天皇 15년조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닫기과 그 장수024024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에는 이들이 佐平으로 되어 있다.닫기 4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025025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에는 군사 29,600명을 참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닫기을 참수(斬首)하였다.026026 김무력성왕을 살해한 이 관산성 전투가 김무력 가문을 신라의 신흥 귀족으로 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신형식, 「김유신가문의 성립과 활동」, 《이화사학연구》 13·14, 1983「한국고대사의 신연구」(重版), 일조각, 1997, 247쪽).닫기

註 021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에는 ‘茂力’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同音異字의 표기이며, 《삼국유사》 권1 기이편 김유신조에서는 ‘虎力’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고려 혜종의 이름인 ‘武’자의 음을 피휘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단양적성비·황초령 진흥왕순수비·마운령 진흥왕순수비 등에는 ‘另力’으로 표기되어 있다(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Ⅱ,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63쪽). 仇衡王과 김무력의 관계에 대해서는 가락국기의 세계《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법흥왕 19년조에 모두 부자 관계(차남 혹은 삼남)로 되어 있지만, 가락국기의 首露王廟에 대한 기사에서는 구형왕 이후의 계보가 구형왕 - 世宗 - 率友公 - 庶云으로 되어 있어 김무력이 빠져 있다. 가락국기의 세계에 의하면 世宗은 茂力의 형이며, 庶云은 김무력의 아들인 金舒玄이다. 이에 대하여 이 계보가 가야의 멸망 후 首露墓의 司祭者를 기록한 것으로, 구형왕이 죽은 뒤 그 장남인 세종이 뒤를 이었으나 다시 그가 죽은 뒤에는 그 아우인 김무력이 뒤를 이어 率友公이라 불렸거나, 또는 솔우공이 이 金國公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하는 설 등(村上四男, 「金官國の世系と率支公」, 《朝鮮學報》 21·22, 1961「朝鮮古代史硏究」, 開明書院, 1978, 372~384쪽 | 이기동·이기백, 「한국사강좌 -고대편-」, 일조각, 1982, 163~164쪽)이 제기된 바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46~647쪽).
註 022
新州는 진흥왕 14년(553)에 한강 하류 지역을 백제로부터 탈취한 이후 설치한 주이다. 道는 이 지역 또는 방향을 뜻하며, 행군은 출정군대를, 총관은 총지휘관을 의미한다. 총관은 당나라 군사의 편제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47쪽).
註 023
백제의 聖王을 가리키며, 당시의 상황은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일본서기》 권19 欽明天皇 15년조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註 024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에는 이들이 佐平으로 되어 있다.
註 025
《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진흥왕 15년조에는 군사 29,600명을 참수한 것으로 되어 있다.
註 026
김무력성왕을 살해한 이 관산성 전투가 김무력 가문을 신라의 신흥 귀족으로 등장시킨 계기가 되었다(신형식, 「김유신가문의 성립과 활동」, 《이화사학연구》 13·14, 1983「한국고대사의 신연구」(重版), 일조각, 1997, 247쪽).
주제분류
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
색인어
이름 : 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