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악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 611년 (음) )

진평왕 건복 28년 신미(611년) 공의 나이 17세에 고구려·백제·말갈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쳐들어온 적을 평정하겠다는 뜻을 가지고 홀로 중악(中嶽)051051 신라에서 신성시 하였던 산 가운데 중앙에 있는 산을 지칭하며, 대체로는 경주시 서면 단석산으로 비정되고 있는데(김상기, 「화랑과 미륵신앙에 대하여 -신선사유구의 조사를 기틀로-」, 《이홍직박사회갑기념한국사학논총》, 신구문화사, 1969「동방사논총」, 서울대 출판부, 1974, 62~64쪽 | 황수영, 「신라 신선사와 송화방」, 《개성》, 1970《황수영전집》 Ⅰ, 혜안, 1998, 600~601쪽 | 정영호, 「김유신의 백제 공격로 연구」, 《사학지》 6, 1972, 31~32쪽), 통일 이전 신라의 三山(奈歷·骨火·穴禮) 중 서쪽에 위치한 穴禮(지금의 경북 청도군 鳥禮山)에 비정하는 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15쪽), 그리고 대구의 八空山으로 비정하는 설(문경현, 「소위 중악석굴에 대하여」, 《신라사연구》, 경북대 출판부, 1983, 220~223쪽 | 김태식, 「방사로서의 김유신 -도교교단으로서의 화랑 탐구를 겸하여-」, 《신라사학보》 11, 2007, 109쪽), 진천의 장수굴로 보는 설(조익현, 「진천지역의 김유신사적에 대한 재검토」, 《고문화》 55, 2000, 57~58쪽) 등도 있다. 본문의 중악과는 관계가 없으나 통일 이후의 5악 가운데 中岳은 父岳(대구 팔공산)이라 하였으나,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영토의 확대 과정에 따라 새로이 정한 것(이기백, 「신라오악의 성립과 그 의의」, 《진단학보》 33, 1972《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205~207쪽)으로 이해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1~652쪽).닫기 석굴로 들어가 몸을 깨끗이 하고는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였다.052052 중악을 포함한 5악 숭배사상이 삼국 통합의 산물이라는 견해(이기백, 「신라 오악의 성립과 그 의의」, 《진단학보》 33, 1972《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205~206쪽)에 근거해 김유신이 중악 석굴로 들어갔다는 일화는 후대의 표현을 소급 적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주보돈, 「김유신의 정치지향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신라사학보》 11, 2007, 8쪽).닫기
“적국이 도가 없어 승냥이와 호랑이처럼 우리 영역을 침략하여 어지럽힘으로써 편안한 해가 없었습니다. 저는 한낱 미미한 신하로 재주와 힘은 헤아릴 수 없이 적지만 재앙과 난리를 없애고자 마음먹었으니 오직 하늘은 굽어 살피시어 저를 도와주소서.”

註 051
신라에서 신성시 하였던 산 가운데 중앙에 있는 산을 지칭하며, 대체로는 경주시 서면 단석산으로 비정되고 있는데(김상기, 「화랑과 미륵신앙에 대하여 -신선사유구의 조사를 기틀로-」, 《이홍직박사회갑기념한국사학논총》, 신구문화사, 1969「동방사논총」, 서울대 출판부, 1974, 62~64쪽 | 황수영, 「신라 신선사와 송화방」, 《개성》, 1970《황수영전집》 Ⅰ, 혜안, 1998, 600~601쪽 | 정영호, 「김유신의 백제 공격로 연구」, 《사학지》 6, 1972, 31~32쪽), 통일 이전 신라의 三山(奈歷·骨火·穴禮) 중 서쪽에 위치한 穴禮(지금의 경북 청도군 鳥禮山)에 비정하는 설(이병도, 《국역 삼국사기》, 을유문화사, 1977, 615쪽), 그리고 대구의 八空山으로 비정하는 설(문경현, 「소위 중악석굴에 대하여」, 《신라사연구》, 경북대 출판부, 1983, 220~223쪽 | 김태식, 「방사로서의 김유신 -도교교단으로서의 화랑 탐구를 겸하여-」, 《신라사학보》 11, 2007, 109쪽), 진천의 장수굴로 보는 설(조익현, 「진천지역의 김유신사적에 대한 재검토」, 《고문화》 55, 2000, 57~58쪽) 등도 있다. 본문의 중악과는 관계가 없으나 통일 이후의 5악 가운데 中岳은 父岳(대구 팔공산)이라 하였으나, 이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영토의 확대 과정에 따라 새로이 정한 것(이기백, 「신라오악의 성립과 그 의의」, 《진단학보》 33, 1972《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205~207쪽)으로 이해되고 있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1~652쪽).
註 052
중악을 포함한 5악 숭배사상이 삼국 통합의 산물이라는 견해(이기백, 「신라 오악의 성립과 그 의의」, 《진단학보》 33, 1972《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205~206쪽)에 근거해 김유신이 중악 석굴로 들어갔다는 일화는 후대의 표현을 소급 적용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주보돈, 「김유신의 정치지향 -연구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신라사학보》 11, 2007, 8쪽).
주제분류
사회>사회조직>화랑도>화랑
색인어
이름 : 진평왕
지명 : 중악
국명 : 말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