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군을 역공하여 승리하다 ( 645년 01월(음) )

을사(선덕왕 14년, 645년) 정월에 돌아와서 왕을 뵙기도 전에 백제의 대군이 몰려와 우리의 매리포성(買利浦城)101101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으로 비정하기도 하지만(김태식, 「백제의 가야지역 관계사 : 교섭과 정복」,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 백제연구소, 1997, 65쪽),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7 영산현 산천조에 買浦津이 있는데, 이는 縣南 23里 지점에 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買浦의 위치로 보아, 買利浦城은 지금의 南海大橋가 지나는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부근에 있었던 듯하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8쪽).닫기을 공격한다는 변경을 지키는 관리(封人)의 급한 보고가 올라왔다. 왕은 다시 [김]유신을 발탁하여 상주장군(上州將軍)102102 上州는 신라가 경주 일원에서 벗어나 영토를 현재의 경상도 지역인 서북·서남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서북지역에 설치한 행정구역이며, 진흥왕대에 上州와 下州를 설치하였다.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에는 상주와 하주의 행정책임자로 行使大等의 직이 보이고 있다. 문무왕 5년 上·下州를 나누어 삽량주를 만들 때까지 그 명칭이 존속된 듯하며, 上州의 治所는 지금의 경북 상주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9쪽).닫기으로 삼아 그들을 막도록 명령하였다. [김]유신은 명을 듣고는 곧 말에 올라 처자식을 보지도 못하고 [전장으로 떠나] 백제군을 역공하여 쫓아냈으며, 2천 명을 참수(斬首)하였다.

註 101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으로 비정하기도 하지만(김태식, 「백제의 가야지역 관계사 : 교섭과 정복」, 《백제의 중앙과 지방》, 충남대 백제연구소, 1997, 65쪽),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7 영산현 산천조에 買浦津이 있는데, 이는 縣南 23里 지점에 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에 나와 있는 買浦의 위치로 보아, 買利浦城은 지금의 南海大橋가 지나는 함안군 칠서면 용성리 부근에 있었던 듯하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8쪽).
註 102
上州는 신라가 경주 일원에서 벗어나 영토를 현재의 경상도 지역인 서북·서남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서북지역에 설치한 행정구역이며, 진흥왕대에 上州와 下州를 설치하였다. 창녕진흥왕척경비(昌寧眞興王拓境碑)에는 상주와 하주의 행정책임자로 行使大等의 직이 보이고 있다. 문무왕 5년 上·下州를 나누어 삽량주를 만들 때까지 그 명칭이 존속된 듯하며, 上州의 治所는 지금의 경북 상주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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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군사>전쟁>전쟁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