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군과 당군이 사비성에서 만나기로 하다 ( 660년 06월21일(음) )

왕은 태자와 장군 [김]유신·[김]진주(眞珠)026026 선덕여왕 8년 사찬으로 北原小京의 仕臣이 되었고, 무열왕 6년(659)에는 兵部令이 되었다. 곧 이어 김유신과 함께 백제 정벌에 참여하였다. 문무왕 원년(661) 7월 고구려 정벌 때에는 대장군 김유신 휘하에서 김인문·김흠돌과 함께 大幢摠管으로 참전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69쪽).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6 문무왕 2년 8월조에 따르면 대당총관 김진주 등이 병을 핑계 삼아 한가로이 지내며 나라일을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 일족까지 멸하였다고 하는 데, 이는 당시 왕권의 전제화에 반대하던 진골귀족에 대한 일종의 억압책이자 나아가 진골귀족의 군사적 기반으로 박탈하는 조치로 이해되고 있다(신형식, 「신라 병부령고」, 《역사학보》 61, 1974《한국고대사의 신연구》, 일조각, 1984, 166~167쪽 | 정경숙, 「신라시대 장군의 성립과 변천」, 《한국사연구》 48, 1985, 21~23쪽 | 주보돈, 「신라 중고기 6정에 대한 몇가지 문제」, 《신라문화》 3·4, 1987, 38쪽 | 김수태, 「신라중대정치사연구」, 일조각, 1996, 17쪽).닫기·[김]천존(天存) 등에게 명하여 큰 배027027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조에는 ‘兵船’이라고 되어 있다.닫기 1백 척에 군사들을 싣고 그들과 만나게 하였다. 태자가 장군 소정방을 만나니 [소]정방이 태자에게
“나는 바닷길로 가고 태자는 육지길로 가서 7월 10일 백제의 왕도(王都)인 사비(泗沘)의 성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하였다.028028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조에 따르면 무열왕은 6월 21일 태자를 보내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하였다고 한다.닫기

註 026
선덕여왕 8년 사찬으로 北原小京의 仕臣이 되었고, 무열왕 6년(659)에는 兵部令이 되었다. 곧 이어 김유신과 함께 백제 정벌에 참여하였다. 문무왕 원년(661) 7월 고구려 정벌 때에는 대장군 김유신 휘하에서 김인문·김흠돌과 함께 大幢摠管으로 참전하였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69쪽). 《삼국사기》 권6 신라본기6 문무왕 2년 8월조에 따르면 대당총관 김진주 등이 병을 핑계 삼아 한가로이 지내며 나라일을 돌보지 않았다고 하여 당사자들 뿐만 아니라 그 일족까지 멸하였다고 하는 데, 이는 당시 왕권의 전제화에 반대하던 진골귀족에 대한 일종의 억압책이자 나아가 진골귀족의 군사적 기반으로 박탈하는 조치로 이해되고 있다(신형식, 「신라 병부령고」, 《역사학보》 61, 1974《한국고대사의 신연구》, 일조각, 1984, 166~167쪽 | 정경숙, 「신라시대 장군의 성립과 변천」, 《한국사연구》 48, 1985, 21~23쪽 | 주보돈, 「신라 중고기 6정에 대한 몇가지 문제」, 《신라문화》 3·4, 1987, 38쪽 | 김수태, 「신라중대정치사연구」, 일조각, 1996, 17쪽).
註 027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조에는 ‘兵船’이라고 되어 있다.
註 028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조에 따르면 무열왕은 6월 21일 태자를 보내 덕물도에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하였다고 한다.
주제분류
정치>군사>군사조직>군사전략
정치>왕실>왕족>태자·태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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