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하다 ( 673년 06월(음) )

[김]유신은 대답하였다.
“신은 어리석고 못났으니 어찌 능히 나라에 이로울 것이 있겠사옵니까? 다행히도 밝으신 임금께옵서 [저를] 등용하고서는 의심하지 않으셨고 일을 맡겨서는 다른 마음을 가지지 않으셨으니032032 이는 「書經」권2 大禹謨章에 나오는 “任賢勿貳 去邪勿疑”라는 전고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0쪽).닫기 그런 까닭에 대왕의 현명함에 기대어 자그마한 공이라도 세울 수 있었나이다. 삼한(三韓)이 한 집안을 이루었으니033033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3국을 통일한 것을 말한다. 삼국을 三韓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자료이며, 이 무렵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또 자료로는 神文王 6년(686)에 세워진 청주시 운천동사적비를 들 수 있다(노태돈, 「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천」, 《한국사연구》 38, 1982, 137~138쪽 |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0쪽).닫기 백성들은 두 마음을 가지지 않게 되었고 비록 태평에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또한 세상이 안정되었다고는 할 만하옵니다. 신이 예로부터 대통을 이은 임금들을 보건대 처음에는 못하는 경우가 없지만 끝까지 잘 하는 경우는 드물어034034 「詩經」권18 湯章에서 나온 말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1쪽).닫기 여러 대의 공적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리니 매우 가슴 아픈 일이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이루어 놓은 것을 지키는 것 또한 어렵다는 것을 유념하시어035035 645년 당나라 태종이 房玄齡·魏徵과 더불어 創業과 守成의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를 논의한 예화(「貞觀政要」君道篇)는 유명하다(이강래, 《삼국사기》 Ⅱ, 한길사, 1998, 777쪽).닫기, 소인배를 멀리하시고 군자들을 가까이 하시며 위로는 조정을 화목하게 하시고 아래로는 백성과 만물을 편안하게 하시어 재앙과 난리가 일어나지 않고 나라의 기반이 무궁하게 된다면 신은 죽어도 또한 여한이 없나이다.”
왕은 울면서 이를 받아들였다.

註 032
이는 「書經」권2 大禹謨章에 나오는 “任賢勿貳 去邪勿疑”라는 전고를 약간 변형한 것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0쪽).
註 033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3국을 통일한 것을 말한다. 삼국을 三韓으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자료이며, 이 무렵 이런 인식을 보여주는 또 자료로는 神文王 6년(686)에 세워진 청주시 운천동사적비를 들 수 있다(노태돈, 「삼한에 대한 인식의 변천」, 《한국사연구》 38, 1982, 137~138쪽 |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0쪽).
註 034
「詩經」권18 湯章에서 나온 말이다(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681쪽).
註 035
645년 당나라 태종이 房玄齡·魏徵과 더불어 創業과 守成의 어느 쪽이 더 어려운가를 논의한 예화(「貞觀政要」君道篇)는 유명하다(이강래, 《삼국사기》 Ⅱ, 한길사, 1998, 777쪽).
주제분류
사회>인구>생로병사>질병·의료
정치>행정>관인>政務諫言
색인어
이름 : 유신